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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무관학교의 독립군 양성┃57 삼일운동 후 신흥무관학교가 더욱 발전하 게 된 것은 의병, 대한제국군, 일본 유학생 등 유능한 인재들이 많이 합류하였던 것이 다. 특히 일본군 장교 지청천, 김경천이 망 명하여 합류한 것은 전술적인 발전 뿐 아니 라 독립군 사기 진작에도 커다란 역할을 하 였다. 신흥중학은 1919년 5 월 3일, 임시로 빌린 양 조장 건물에서 고산자 신흥무관학교의 개교식 을 가지며 신흥무관학 교로 명칭을 변경하고 초등군사반, 간부 훈련 반 등을 운영하여 본격 적인 독립군 양성에 들 어갔다. 신흥무관학교 본교 유저지(길림성 유하현 고산자 대두자촌) 신흥무관학교 분교 쾌대무자 유적지(길림성 통화현 쾌대무자진) 신흥강습소가 설립되었던 삼원포 대고산 일대(위), 신흥무관학교 병영이 있었던 합니하 유적지 (아래) 1910년 국권상실 후 만주로 망명한 독립지사들이 독립의 꿈을 안고 세웠던 신흥강습소 터, 부민단원과 신흥학교 학생들이 피땀으로 황 무 지를 일구어 병영을 일구고, 농경지로 만들었던 신흥무관학교 유적지에 기념비커녕 안내표지판도 없고, 역사의 흔적도 없이 중국 농부 들 이 차지한 채 그들의 영광과 풍요로움만 남아 있다.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 신흥무관학교-독립군 장병 3,500명 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