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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적연의 유래와 전설
화적연은 순 우리말로 '볏가리소' 라고 한다. 뜻은 '벼화', '쌓을 적', '연못 연'자를 써서 "볏짚단을 쌓아 놓은 듯한 연못”을 의미한다. 화강암 바위가 한탄강을 휘몰아치는 곳에 우뚝 솟은 모습이 마치 벼 짚단을 쌓아 놓은 모습을 하고 있어 이름이 붙여 졌는데, 화적연과 관련해서 많은 전설이 내려온다. 그중 하나는 "옛날 어느 날 한 늙은 농부가 3년 동안 가뭄이 들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자 하늘을 원망하면서 이 연못가에 앉아 탄식하고 있었는데, 늙은 농부는 '이 많은 물을 두고서 곡식을 말려 죽여야 한단 말인가! 하늘도 무심하거늘 용도 3년을 두고 잠만 자는가 보다.' 라고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그때 화적연 물이 왈칵 뒤집혀서 용의 머리가 쑥 나왔다. 농부는 기절하게 놀랐는데 용이 꼬리를 치며 하늘로 올라가더니 그날 밤부터 비가 내려 풍년이 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처럼 화적연은 그 모습을 두고 농경사회였던 전통시대에 농사에 얽힌 많은 전설과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국행 기우제 터였던 화적연
농경사회였던 조선시대에 기이한 형상을 한 화적연을 볏짚단과 비교하며 신성 시 했다. 이는 곧 풍년과 지역의 번영 그리고 안녕을 기원하는 대상물로 여겨졌다. 특히 화적연은 조선 후기에 와서 국가에서 거행하는 국행기우제 중 12번째인 마지막으로 기우제를 올렸던 곳으로 가뭄이 극심할 때 조정에서 정승을 보내 제례를 지냈던 곳이었다. 화적연은 한강 이북 권역에서는 개성의 박연폭포와 함께 국행기우제를 지냈던 곳이다. "당시 오래도록 가물어, 여러 신하들을 나누어 보내서 송경(松京)의 박연(朴淵), 영평(永平)의 화적연 (禾積淵), 양근(楊根)의 도미진(渡迷津), 과천(果川)의 관악산(冠岳山)에서 비를 빌게 하였다." [숙종실록 31권, 숙종 23년 5월 16일 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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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적연 기우제문
신령스러운 못 엉기어 빠지니 / 靈湫凝湛 (령추응담)
뭇 물줄기 돌아 흘러 모이네 / 衆流攸匯 (중류유회)
구름과 함께 비를 내려주시니 / 與雲降雨 (여운강우)
응험은 있고 업신여김 없도다 / 有應無怠 (유응무태)
오늘 이 큰 가뭄 / 今兹大旱 (금자대한)인민의 목숨이 거의 위태롭도다 / 民命其殆 (민명기태)
덕 잃음은 나에게 있으니 / 失德在予 (실덕재여)인민이 무슨 죄 있겠는가 / 赤子何罪 (적자하죄)
정성은 자질구레하고 격식조차 갖추지 않았으니 / 微誠未格 (미성미격)
근심과 두려움 날로 더 하네 / 憂懼百倍 (우구백배)
많고도 큰 비 담은 단 못이여 / 庶濡甘澤 (서유감택)
이 굶주림에 은혜를 베푸소서 / 惠此飢餒 (혜차기뇌)
이경석(1595~1671) ≪백헌선생집白軒先生集≫ 16 〈무진년(1628) 5월 중신을 파견한 기우제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