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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천 목사님은 1885년 11월 19일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칠산리에서 장기영 감로의 외아들로 출생하셨고 1902년 3월 16일 친산 교회 스테드만 목사님으로부터 침례를 받으셨다. 홍봉준 감로의 장녀 홍살람과 결혼하여 외 아들 장일수 목사와 3녀를 두었으며 신실하게 열정적으로 신앙생활 하던 중 1909년 제4차 대화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 탁월한 은사로 전국을 다니며 부흥회를 인도 하셨다. 1938년 일본은 한인들의 정신과 역사까지도 일본인화 시키겠다는 황민화 정책으로 신사참배, 창씨개명, 일본어 사용을 강요하고 한국 민족 말살 정책을 펴게 되었는데 천주교를 비롯한 감리교와 장로교단 등 모두가 일제의 강압적인 압력에 굴복하여 신사 참배를 하였으나 침례교단인 동아 기독교 지도자들은 끝까지 신사참배 등을 거부한 죄목으로 1942년 9월 4일 부터 침례교 지도자인 장석천 목사님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원산형무소로 압송되어 온 32명과 함께 투옥되었고 1944년 5월 10일 함흥 재판소에서 동아 기독교 교단 해제령이 내려지므로 각처에 산재해 있던 침례교회들은 집회금지는 물론 교회 종을 강제로 빼앗아 갔으며 예배당은 매각하여 일본의 전쟁을 위한 군자금으로 빼앗기는 교단적인 시련과 함께 장석천 목사님은 함흥형무소에서 2년 동안 모진 고문과 혹독한 옥고를 치루는 중 1944년 5월 15일 병 보석으로 석방 되었다. 1946년1월 10일 교단 재건을 위한 임시 총회를 칠산 장석천 목사 댁에서 개최하였고 옥고를 치른 후유증이 심화되어 1949년 9월 2일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소천 하셨다.
2015년 105차 총회에서 1944년 5월 10일 신사참배 거부 교단 기념일로 결의 하였기에 침산침례교회 120주년 기념주일을 맞이하여 자랑스러운 장석천 목사님의 순교적 신앙생활을 본 받고자 온 성도들과 함께 기념비를 세웁니다. 칠산교회 조용호 목사외 성도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