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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순국선열 • 오의선 선생 59 최로 웅변대회 등을 개최하고 후일을 도모하 기로 했다. 이 계획에 따라 1918년 12월 하 순 동경의 YMCA 강당에서 웅변대회가 열렸 다. 그 직후 백관수·김도연·송계백·최근우 등 을 추진위원으로 선출하고 산회하였다. 오의선은 ‘2 · 8독립선언’에 앞장서서 적 극적 활동을 벌였다. 재학 중인 1919년 2 월 8일 백관수·김도연 등 유학생들과 동경 YMCA 강당에서 열린 2 · 8독립선언식에 참 여하였다. 각 대학에 흩어져 있는 유학생들 에게 대회장까지 나오도록 연락하고 독립선 언서를 배포하며 열기를 고조시켰다. 이러한 적극적인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행히 일 본 경찰에 검거되지 않았다. 그러나 학업을 포기하고 다른 여러 동지들과 함께 애국지사 들이 많이 모여 있는 중국 상해(上海)로 건너 갔다.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의 활동 상해에 도착한 뒤 당대 기라성 같은 애국 지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김구(金九)를 비롯 하여 이동휘·이시영·이동녕·조소앙 등과의 만남은 조국애를 한껏 깊게 하였다. 3 · 1운동 의 결과 같은 해 4월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 부가 수립되었다. 그는 경기도 대표로 임시 의정원 의원에 선출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의 정원의 최초 의원이 된 것이다. 이 시기 그와 함께 경기도 의원에 선출된 사람은 조완구· 이기룡·최창식·신익희·최근우 등이었다. 임시의정원은 비록 정원에는 차지 않았지 만 4월 30일부터 개회된 제4차 회의부터 본 격적인 의정활동을 시작하였다. 4차 회의는 5월 13일까지 진행되어 회기가 14일간이나 되었다. 회기 초반 의원들은 임시의정원법 제21조에 의해 의장에 손정도, 부의장에 신 규식을 선출하였다. 이 회기 동안 그는 김동 형·이춘숙 등과 함께 의정원 세칙제정(細則制 定) 위원에 선임되었다. 이와 함께 의정원에 올라온 법률을 심사하는 청원법률 심사위원 도 함께 맡게 되었다. 임시의정원 의원으로서 이같이 적극적으 로 활약하는 한편, 1919년 7월 1일 상해의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임시회록(국가보훈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