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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순국선열 • 김약연 선생 59 의 자치기 관을 자임 하였다. 국 자가(局子 街 ) 에 본 부 를 두 고 연길(延 吉 ) · 화 룡 (和龍)·왕청 현(汪淸縣) 등지에 분회를 설치해 호구(戶口) 를 조사하고 인두세(人頭稅)를 징수하며 교육 계몽사업을 전개하는 등 북간도 한인 사회의 정부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중국 관청 또한 일체의 한인 관련 업무를 간민회를 통해 집 행하였다. 그러던 중 중국 중앙의 위안스카이[袁世凱] 정부가 중앙집권체제를 강화를 위해 1914년 3월 지방연성자치기관 철폐 명령을 하달하 면서 간민회 총회도 해체되었다. 이후 1918년 11월 제1차 세계대전이 종 료되면서 북간도 지역에도 미국 대통령 윌 슨의 민족자결주의 주창과 파리강화회의 개최 소식이 전해졌다. 이듬해 2월 8일 재 일 유학생들이 도쿄에서 독립을 선언한 소 식도 북간도 지역 한인들을 고무시켰다. 이어서 독립운동 지도자 39인과 함께 김약 연이 연서한 「대한독립선언서」가 발표되 었고, 만주를 비롯해 국내와 러시아, 미주 등지로 전파되었다. 같은 해 2월 정재면과 함께 러시아 연해 주에서 열리는 한족대표자회의에 참석할 북 간도 대표로 선임되었다. 3월 초까지 연해주 니콜리스크에서 열린 회의의 결과 대한국민 의회(大韓國民議會)를 성립시켰고, 본 회의에 서 “일본이 온갖 협박과 공갈적인 수법을 동 원하여 한국인은 일본에 합방을 원한다는 의 사를 파리강화회의에 제공할 계략을 꾸미고 있다”라고 폭로하고 대비책 강구를 촉구하였 다. 한편 러시아에서 전로한족회중앙총회(全 명동학교 고등과 제5회 졸업기념 사진(1920년 3월 26일, 독립기념관 제공).  앞줄 가운데가 김약연 선생  명동촌 막새기와(태극기 · 무궁화 · 십자가 문양이 혼합돼 있다)  명동학교 꽃문양 막새기와 모음(김재홍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