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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중국 동북지역(만주) 독립운동 현장과 백두산을 가다 59 기미년(1919년), 전국의 3·1독립운동 터에서 불렀 던 이 노래를 지은 분이 탄운 이정근 의사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금 이 노래비는 탄운 선생의 고 향인 화성시 장짐리에 있다. “탄운 이정근 의사는 한때 구 한말 정부 궁내부 요직까지 벼 슬길에 오르셨으나 일본 제국 주의자들의 야만적인 을사늑약 에 큰 충격과 의분을 느낀 나머 지 벼슬자리를 초개와 같이 버 리시고 향리로 낙향하시어 부근 각처로 순회하시며 서당을 세워 문맹퇴치 운동에 전력하는 한 편, 조국 광복을 위해 독립운동 을 하시면서 화성군 산하 7개면 을 우선 골라 800여 명의 제자 를 길러내셨습니다. 1919년 3 월 31일 낮 12시 정각을 기해 저 희 800여 제자들은 머리에 흰갓 을 쓰고 손에 태극기를 들고 남 녀노소 할 것 없이 구름같이 모 인 군중과 합세하여 대한독립만 세를 불렀습니다. 그때 나의 나 이는 19세의 철부지 소년이었습 니다. 그 당시 스승님을 모시던 제자 800여 명 중 제가 가장 연 소자였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탄운 선생 의 제자 김영태 선생은 탄운 선생을 추모하는 책 《탄 운 이정근 의사 전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그러한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기념사업회에서는 지난 2004 년 3월 장학회를 설립했다. 올해로 제21기 장학생 209명을 배출한 기념사업회는 화성시 6개읍면(향 현지 중국 안내판의 맑은 날의 천지 사진. 천지 앞 안내판에 중국이 제시하고 있는 사 진이다(중국명 ‘장백산’ 천지). 백두산 천지의 모습(7월 5일, 서파(西坡)에서 본 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