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page

이달의 순국선열 • 이재유(李載裕) 선생 59 그는 또한 코민테른 등의 국제 조직에 맹목적이고 무비판적으로 추종하거나 교조적이고 경직된 이론을 고수하는 것을 거부하고, 조선의 현실에 대한 주체적이고 구체적인 운동방침을 수립해 그 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이재유의 노동운동은 흔히 국 내에 기반을 둔 국내파운동으로 인식되어 왔다. 또한 당시의 사회 주의운동이나 노동운동에서 대부 분의 운동가들이 지식인과 전위의 역할을 강 조했던 것에 비해 이재유는 대중의 역할과 아래로부터의 주체성과 자발성을 중시했다. 이재유는 운동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대중 에 대한 지도보다는 대중운동에 대한 응원의 차원에 보다 중점을 두었다. 그는 운동노선의 수립과 실천에 관련된 많 은 저작들을 남겼다. 현재 「자기비판문」, 「일 상생활의 주의」, 「군중접촉의 주의」, 「회합 시의 주의」, 「공장내의 활동기준」, 「학교내 의 활동기준」, 「세말캄파니아 투쟁방침서」, 「8·1캄파니아의 구체적 실행방법」, 그리고 1937년 감옥에서 자술서 형식을 빌어 쓴 「조 선에서 공산주의운동의 특수성과 그 발전의 능부(能否)」 등의 논문과 팜플렛 등이 전해 지고 있다. 이재유의 사상과 운동은 일제하 국내파 공 산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민족해방운 동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급진적 마르크 스주의 전통의 정수를 잘 드러내면서도, 민 족적이고 민중적, 혁명적인 성격을 띤 것으 로 평가된다. 이관술과 이재유가 살았던 노해면(창동) 아지트( 『매일신보』 1937.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