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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의 발상지 전주 전주는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의 본향이다. 태조의 고조부 목조 이안사가 동북면으로 이주해 갈 때까지 그 선조들은 대대로 전주에 살았 다. 전주는 조선건국과 함께 왕조의 발상지가 되어 풍패지향(豊浦之鄉)으로서 위상이 격상되었다. '풍패'란 건국자의 본향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조선은 건국 후 1410년(태종 10) 왕실의 뿌리인 전주에 태조 어진(왕의 초상)을 봉안하고 경기전(慶基展)이라고 이름하였다. 전주이씨 시조 이한(李翰)과 시조비 경주김씨의 위패를 모신 시조사당 조경묘(肇慶廟)와 시조 이한의 묘역 조경단(肇慶壇), 태조가 황산대첩 후 귀경길에 들려 일가친지를 모아놓고 잔치를 베풀었던 오목대, 목조가 살았던 자만동 이목대 등도 풍패지향 유적들 이다. 전주객사를 '풍패지관(豊沛之館)'이라고 한 것도 '풍패'에서 따온 것이고, 남문을 풍남문이라고 한 것도 '풍패'에서 '풍'자를 따와 붙인 이름이다. 서문은 '풍패'의 '패'자를 따서 패서문이라고 하였다. 세종대 전주사고 설치도 전주가 풍패지향이라는 데서 연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