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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2024년 11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결이 더욱 고조되어 갔던 것이다. 장태수 선생은 1841년 12월 24일 전라북 도 김제군 금구면 서도리에서 출생하였다. 본 관은 인동, 자는 성안(聖安), 호는 일유재(一逌 齋), 남강거사(南岡居士)이다. 부친은 장한두 (張漢斗)로 첨중추(僉中樞)를 지냈다. 1861년 그는 정기 과거시험인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다. 그는 전형적인 양반 가문 출신으로 한학의 수준도 매우 높았던 것 같 다. 과거 급제 후 외교문서를 작성하고 보관 하던 승문원 권지부정자로 관직에 올랐다. 이 후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 장령, 예조정랑 등 중앙의 청요직(淸要職)을 거쳤다. 1867년에는 목민관인 양산군수에 임명되 어 민생안정에 힘쓰고, 부국양병에 주력하였 다. 일설에는 1866년 병인양요 직후 5천여 명의 정병을 양성했다고 한다. 특히 임진왜 란 당시 순절한 조영규(趙英珪)의 제단을 고 쳐 제향한 공이 있었다. 이러한 공덕으로 통 정대부에 오른 그는 1872년에는 고종(高宗) 을 수행하여 개성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이 후 병조참의, 동부승지, 춘추관 수찬관을 지 내는 등 중앙의 여러 요직을 역임하였다. 그 리고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다시 외직인 고산현감으로 부임하여 민심을 안정 시키는 데 힘을 쏟았다. 을미사변과 을미개혁에 항거하여 모든 관 직을 사직하고 낙향 1864년 6월 21일 일본군이 경복궁에 난입 하여 민씨정권을 붕괴시키고 친일정권을 수 립했다. 곧이어 청일전쟁을 도발하여 청나 라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냈다. 그리고 다 른 한편으로는 반(反)외세, 반(反)봉건의 기치 아래 전개된 동학농민운동을 무력으로 탄압 하여 한민족의 자주적 근대화의 길을 봉쇄하 장태수를 고산 현감으로 임명하는 내용의 칙지(1894년) 장태수가 입었던 관복(조복)(이상 국가보훈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