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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2024년 9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만주로 건너가 신채호·이회영 집에서 묵으 며 항일 예술의 바탕될 체험 조국 독립에 대한 이 같은 열정이 있었기에 출옥하자 곧 해외로 망명하여 유학하기로 결 심하였다. 3 · 1운동 참여로 경성고보에서 퇴 학당했기 때문에 그러한 결심은 더욱 굳어졌 다. 그리하여 그 해 겨울 중국으로 망명하여 북경(北京)에서 단재 신채호와 우당 이회영 등 독립운동가들을 만났고, 그들의 영향으로 민족독립의 의지를 더욱 굳혔던 것으로 생각 된다. 그 때의 사정은 다음과 같은 그의 회고 에 잘 나타나 있다. “기미년(1919) 겨울 옥고를 치르고 난 나 는 어색한 청복(淸服)으로 변장을 하고 봉천 (奉天, 현재 심양)을 거쳐 북경으로 탈주하였 다. 몇 달 동안 그곳에서 두류(逗留)하며 연골 (軟骨)에 견디기 어려운 풍상을 겪다가 수삼 차 단재(신채호)를 만나 그의 우거(寓居)에서 며칠 저녁 발치 잠을 자면서 가까이 그의 모 습을 접하였다. 감명 깊은 그의 말씀도 여기 서는 약(畧 )할 수밖에 없다. … 북경서 지내던 때의 추억을 더듬자니 나의 한평생 잊히지 못 할 또 한 분의 선생님이 생각이 난다. 그는 수 년 전 대련(大連)서 칠십 노구로 쇠창살에 갇 히어 이미 고인이 된 우당(이회영) 선생이다. 나는 맨 처음 그 어른에게로 소개를 받아서 북경으로 갔었다. 부모의 슬하를 떠나 보지 못하던 19세의 소년은 우당장(友堂丈)과 그 어른의 영식인 규룡(圭龍)씨의 친절한 접대를 받으며 월여(月餘)를 묵었다. 조석으로 좋은 말씀도 많이 듣고 북만(北滿)에서 고생하시던 신문기자 시절의 심대섭(앞줄 왼쪽, 한국향토문화전재대전 제공) 심훈(심대섭)의 「통곡 속에서」 시 검열본. 1926 년 4월 29일 심훈은 순종(융희황제)의 국장이 준 비되고 있는 창덕궁 돈화문 앞에서 이 시를 읊었 는데, 5월 16일 『시대일보』에 게재되었다. 이 시 는 이 해 6 · 10만세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