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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2024년 6월 Special Theme 제14회 ‘의병의 날’ 기념 특집 ‘대한제국기 후기 의병의 봉기와 일제의 의병 탄압’ 찍은 점과 일제가 그들을 ‘수괴 중 거벽’이나 ‘폭도수 괴’로 평가하는 점도 그들에 의해 일본군이 얼마나 곤욕을 치렀는가를 반영하는 것이다. 네 번째 사진은 앞에서 소개한 의병장 사진들과 다른 정황을 담고 있다. 이 사진에 대한 일제의 설명 을 살펴보자. “메이지 42년(1909) 10월 전라남도 목포에서, 영 광 부근에서 체포 및 자수한 폭도에게 전라남도 관 찰사 신응희(申應熙)가 훈계하고 있다. 고지 중간에 일장기가 나부끼는 곳은 목포이사청(木浦理事廳). 헬 멧형 모자를 쓴 이가 신[응희-필자]관찰사이다.” 사진에서 일제의 ‘남한대토벌작전’으로 체포된 의 병들 앞에서 훈계하는 신응희는 당시 전라남도 관 찰사에 재임할 때 일제가 저지른 ‘남한대토벌작전’ 을 적극 지원하여 의병운동 진압에 기여를 한 인물 이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와서 함경남도장관, 황해도장관을 역임하며 3 · 1운동 참여자를 색출하 는 자제단(自 制團) 을 조직하여 일제 의 식민통치에 협 력하였고, 1924년 중추원 참의로 임 명되어 1928년 2 월에 사망할 때까 지 재임하는 등 친 일반민족행위자로 평가받고 있다. 일 본군에게 체포된 피폐한 의병들과 그 앞에서 양복과 모자를 착용한 친일협력자 신응희의 대조적인 모습에서 당시 비통 한 역사의 한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사진의 사본 역시 독립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 마지막 다섯 번째 사진은 숲 속으로 보이는 장소 에서 5명의 인물을 함께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에 대한 일제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메이지 42년(1909) 10월 9일 전라남도 풍치(風 峙) 바위굴 안에서 임시한국파견 보병 제2연대 제3 중대에게 포박당하였다. 당시 같은 동굴 안에 있던 사람으로 오른쪽부터 뒷줄(後列)은 폭도 수괴 강무 경 · 심남일, 앞줄(前列) 오른쪽부터 강무경의 아내 · 심 남일의 첩 · 강무경 아내의 동생이다.” 이 사진에 나온 5명의 인물들 중에서 의병장 심남 일의 첩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의병활동에 참여 한 사람들로 확인된다. 심남일 옆에 앉아 있는 남자 는 강무경의 매제인 양성일로 함께 의병운동에 참여 사진 ➍ 『韓国 全羅南道での写真』 ‘신응희가 훈계하는 광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