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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엄씨대종회보 40호· 47 복야공(僕射公) 삼성당공(三겛堂公)계 보력(譜歷) 형성되기를 바람에서다. 자기 정체성 발견과 파악을 통해 부모와 조상 의 보이지 않는 사랑과 배려 속에서 물려 받은 참된 인성과 자질을 갖추어 자기발전과 가족과 이웃과 사회와 엄문(嚴門)과 국가와 인류 발전 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인재로 커 나가기를 바 라는 뜻에서다. ‘왕후장상 영유종호(王侯將相 寧有種乎)’라 했다. 나. 삼성당공(三겛堂公)계 약사(略史) 임진왜란(壬굪倭갺) 의병장(義兵將) 삼성당 공(三겛堂公) 현( )은 영월엄문(곻越嚴門)의 시조(始祖) 내성군(갘城君) 엄임의(嚴굟義)공 으로부터 16세(世)이시다. 시조공으로부터 5 세(世) 복야공(僕射公) 광(光)공이 11대조, 11 세(世)인 총제공(摠制公) 유온(有溫)공이 5대 조, 13세(世)인 사직공(司直公) 산수(山壽)공 이 증조부이시다. 사직공(司直公)의 장자(長 子)인 훈(訓)공이 조부며, 훈(訓)공의 삼자(三 子)인 15세(世) 용공(用恭)공은 부(父)이시다. 모(母)는 진사(進士) 팽(彭)공의 따님이신 풍 양 조(趙)씨다. 1542년(中宗 37년)에 태어나 1592년(宣祖 25년)에 돌아가셨으니 향년 52세(歲)이시다. 자(字) 형도(亨道)공, 호(號) 삼성당공(三겛堂 公)이시다. 5대조인 총제공(摠制公) 유온(有溫)공은 조 선 세종조(世宗朝) 때에 가선대부(嘉善大夫) 도총제부(都摠制府) 동지총제(同知摠制)를 지 내셨다. 총제공(摠制公) 유온(有溫)공의 장손(長孫) 인 사직공(司直公) 산수(山壽)공은 그 둘째 따 님이 성종(成宗)의 귀인(貴人)이 되셨는데, 연 산군(燕山君) 갑자사화(甲子士禍 1504년) 때 간신 임사홍(任士洪)이 연산(燕山)의 생모 윤 씨(尹氏)가 폐비된 것이 엄귀인(嚴貴人)의 모 함 때문이었다는 억울한 누명을 씌워 사직공(司 直公) 산수(山壽)공과 윤필상(尹弼商) 등 12 대신이 참형을 당하는 끔직한 비극을 당하셨다. 사직공(司直公)의 장자(長子)인 14세(世) 통 훈대부선공감(通訓大夫繕工監) 훈(訓)공은 이 천(괿川)에 피거(避居) 하다가 돌아가셨다. 부(父) 생원(生員) 용공(用恭)공은 그 후 기 묘사화(己卯士禍 1519년 중종 14년)의 화(禍) 를 입어 이를 피해 홀로 이천(괿川)을 떠나 낙 남(갳南)하신 기묘유현(己卯儒賢 : 기묘사화 피 해를 크게 당한 선비)이시다. 갑자사화(甲子士禍)와 기묘사화(己卯士禍), 연속 두 번에 걸친 사화(士禍)의 참화로 가세는 비록 어려워졌으나 선비의 기개를 잃지 않는 가 풍 속에서 어머니의 정성어린 훈도(薰陶)를 받 고 자란 현( )공은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강건 하여 글 읽기를 좋아하고 무예 익히기에도 열심 이셨다. 사마시(司馬試)에 급제, 진사(進士)가 되시고, 계속하여 학문과 무예에 열중하여 사직 에 크게 봉사할 준비를 하고 있던 중 임진왜란 (壬굪倭갺)이 발발하자 관군의 병력만으로 대 적하기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각지에서 의병이 분기함에, 삼성당공(三겛堂公) 현( ) 공도 분연히 떨치고 일어서 장자(長子) 백(伯), 차자(次子) 우(佑), 맏손자(胄孫) 귀선(貴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