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page

이달의 순국선열 • 신팔균 장군 57 달려들어 등에 업고 포위망을 탈출했으나, 향년 42세로 끝내 순국하고 말았다. 운명하 던 순간 장군은 “일본군과 싸우다가 죽으려 고 했더니 무관한 중국사람과 싸우다가 죽는 구나!”하며 통분해 하였다. 장군을 습격한 중 국 지방군은 일본의 통화(通化) 영사분관(領 事分館)의 사주를 받은 중국 장작림 지방 군 벌부대와 경찰들이었다. 신팔균 전사 소식에 부인 임수명도 자결 신팔균이 남만주에서 순국할 당시 중국 베 이징에 거주하고 있던 부인 임수명(任壽命) 여사는 만삭의 몸으로 어렵게 연명하고 있었 다. 신팔균의 동지들은 임여사가 남편의 전 사소식을 알면 유산될까 염려하여 일체 알리 지 않고 모국으로 돌아갈 것을 주선하였다. 그녀는 1924년 9월 서울로 돌아와 사직동 에서 셋방 한 칸을 얻어 근근이 생계를 유지 하던 중 유복녀를 출산하였다. 임여사는 자 녀 삼남매를 데리고 있었다. 남편이 돌아오 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부인은 나중에 남편이 전사하였다는 흉보를 듣게 되었다. 이에 겹 쳐 둘째 아들을 병으로 잃게되자, 1924년 11 월 2일 갓난 딸과 함께 부군을 쫓아 음독하 여 자결하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비극 이었다. 임수명은 1912년 서울에서 간호원으로 일 할 때 일본 경찰에 쫓겨 환자를 가장하고 입 원하고 있던 신팔균과 1914년 결혼했다. 그 뒤 신팔균과 함께 만주에서 풍찬노숙하며 비 밀 문서 전달, 군자금 모금, 독립군 후원 등 활동을 해왔다.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했다. 임수명 여사에게도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부인 임수명(1894~1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