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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나는 삶 이야기 • 자생의료재단 신민식 사회공헌위원장 57 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7년 11월 아버님 제사 때였습니다. 형님께서 늘 해주시던 이야기, 즉 아버 님께서 독립문이나 부근을 지날 때면 으레 “저기 서 대문형무소에서 내가 10개월간 감옥에 갖혀 고생했 다”는 말, 그리고 형에게 옆구리를 보여주시며 함경 도 혜산진에서 일본 경찰에 잡힐 때 칼에 맞은 상처 자국이라고 했다는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었습 니다.” “그 이후부터 아버님께서 남긴 『월남유서(越南遺 書)』를 다시 들여다보며 자세히 조사하기 시작했죠. 이 기록이 매우 중요했어요. 종조부(신홍균)의 한의업 과 독립운동 참여 사실이 꽤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습 니다. 또 부친의 용정(龍井) 동흥학교 재학 사실 및 제3 차 간도공산당 등 관련 독립운동 사실도 적혀있었죠.” 사실 1920년대 북간도(현재 중국 연변지방) 동흥 학교는 천도교 종단에서 세운 민족학교로 매우 유명 했다. 그리고 1920년대 후반에서 30년대 초반까지 광주학생운동의 영향으로 북간도 지역에서는 다양 한 민족독립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이 전개되었다. 따 라서 신광렬 선생도 이러한 분위기에서 광주학생운 동과 관련된 민족운동에 연루되어 함경도에서 경찰 에 잡혔고, 결국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던 것이다. 신위원장은 한방병원장을 맡고있는 바쁜 와중에 작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찾 기 위해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후 직접 독립운동 관련 기록이나 유물을 찾기 위해 일본을 세번, 중국 을 네번이나 가서 현장이나 문서기록관을 찾아다니 는 노력과 용기를 발휘했다. 특히 2019년 3월 신홍균 선생이 군의관으로 참전 했던 한국독립군의 대전자령(大甸子嶺)전투 현장을 탐방했을 때 정말 불 가사의한 기적같은 일이 일어 났다고 밝 힌 다 . 유 물 탐지를 위해 직접 금속탐지 기를 동원 하고 대전 자령 현장 을 확인하 기 위해 드론까지 띄웠는데, 참으로 천우신조(天佑神 助)인지 독립군이 매복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곳에서 탄피 하나를 발굴한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 전문가에 게 감정의뢰해보니, 당시 독립군이 많이 사용한 러시 아제 모신나강소총의 총알 탄피로 확인되었다. 그 드 넓은 만주 땅에서 탄피를 찾은 일은 정말 ‘드라마틱한 기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고 아직도 흥분된 듯한 목소리로 말하는 신민식 위원장. 이 ‘사건’은 신위원장 의 독립운동 자료 발굴과 추적, 두분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유공자 서훈 과정에 더욱 큰 용기를 불어넣는 계 기가 되었다. 너무 까다롭고 어려운 독립유공자 심사와 포상 위 두분의 독립유공자 포상에 이르기까지 국가보 훈처에 몇차례나 직접 다녀오면서 많은 애로를 느끼 기도 했을 것이다. 오는 6월 초에 국가보훈처가 국가 월남유서의 서대문형무소 관련 부분(왼쪽) 월남유서(1959년 초고, 1966년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