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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2025년 1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걸쳐 격퇴하는 등 기세를 드높였다. 특히 진주의병진은 일본인과 결탁한 친일 파는 물론 단발자 등을 처단함으로써 봉기의 목적인 반일·반침략 위정척사의 성격을 분명 히 하였다. 일제 침략의 거점 부산 공략을 위해 동진 노응규가 이끄는 진주의병부대는 일제 침 략의 관문이고, 경제침탈의 거점인 부산 개 항장을 공략하기 위해 동진(東進)하여 갔다. 그리하여 문산·반성·군북·함안·마산·진영 등 을 거쳐 3월 29일 부산에서 불과 70여 리 떨 어진 김해까지 진출했다. 그 뒤 진주의병진 은 구포(龜浦)의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여 괴멸시키고, 부산 개항장의 일본인 거류지를 습격하기 위해 4월 11일 김해에서 구포로 건 너가는 선암나루터에 집결했다. 하지만 사 정이 여의치 않아 김해로 귀환하던 중 일본 군 수비대 정찰분대의 선제 공격을 받았다. 이날 진주의병진은 일본군의 공격을 격퇴했 지만, 다음날 일본군 수비대가 증원군을 파 견하여 다시 공격해 오자 창원 방면으로 일 시 퇴각하였다. 4월 12일 밤 김해에서 구포 로 돌아가던 일본군 수비대를 습격하여 김해 평야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적군 4명 을 살상하는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진주의 병진도 4명이 전사하고, 20여 명이 부상하는 전력 손실을 당하여 부득이 부산진공 계획을 포기하고 진주로 회군하였다. 그러나 1896년 4월 24일 밤 서울에서 내 려온 경군 500명과 대구진위대 지방군 200 명 등 700명의 공격을 받고, 패퇴하여 소수 병력만 이끌고 진주성을 빠져 나갔다. 이 무 렵 고향 안의에서는 부친과 형 노응교(盧應 交)가 서리(胥吏)들에게 살해당하고, 가산이 몰수되었다. 부득이 의병을 해산하고 새로 일본군의 의병 동향 보고 「주 폭민(州暴民) 노응규의 상소문,  정한용의 격문, 기타 적정탐지 기(賊情探偵記) 사본 제출 건」 (국가보훈부 제공) 최근 일본에서 발견된 노응규  상소문 원본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 이태룡 소장(오른쪽)과 강효숙 연구원이 최 근 일본 아시아역사자료센터 측이 공개한 조선 의병 관련 자료에서 노응 규 의병장의 친필 상소문으로 추정되는 자료를 발견했다고 밝히고 있다 (2022.7.10, 연합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