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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2024년 12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배속 받아 언어와 문장을 지도 받았다. 운남강무학교를 마친 후 이회영 만나 아나 키즘 수용 교도대 2년 과정을 마친 후 1923년 봄 운 남강무학교에 16기생으로 입학하여 정식 사관교육을 받게 되었다. 이때 동기생인 대 전 출신 김노원(金魯源)을 만났다. 두 사람 은 서로를 격려하면서 훈련을 거듭해 마침 내 1925년 4월 운남강무당을 졸업하게 되 었다. 함께 일하자는 당계요(唐繼堯) 독군(督 軍)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만주로 귀환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고자 했다. 그는 김노원 과 함께 곤명(昆明)을 떠나 광동을 거쳐 상해 로 나갔다. 그곳에서 임시정부 요인들을 비 롯해 유자명 등 의열단계열 청년들, 아나키 스트 이을규·이정규·정화암 등과도 접촉하였 다. 1926년 4월말 상해를 떠난 김종진은 북 경 근처의 천진에 있는 이회영을 찾아가 수 일에 걸쳐 사상담화를 나누게 되었다. 노혁 명가 이회영과의 담화를 통해 김종진은 아나 키즘적 독립운동 방법론을 받아들이게 되었 다. 이후 천진역을 떠나 6촌형 김좌진이 활동 하고 있는 북만주로 가게 되었다. 1927년 10월 하순 동만주의 목단강역(牧 丹江驛)에서 족형인 백야 김좌진을 만난 뒤 독립전쟁을 위한 둔전(屯田) 양성계획을 서둘 렀다. 김좌진 대변자로 한족총연합회에서 농무와 조직선전 차장 맡아 이러한 ‘만주에서의 독립운동계획안’은 곧 북만주지역 통합 독립운동 조직인 신민부 (新民府) 개편으로 이어졌는데, 사상적 통일 을 기하기 위해 1929년 7월 ‘재만조선무정 부주의자연맹’을 조직하게 되었다. 동지들 은 이준근(李俊根) · 이강훈(李康勳) · 이붕해(李 鵬海) · 이덕재(李德載) · 이달(李達) · 김야봉(金野 蓬) · 김야운(金野雲) · 엄형순(嚴亨淳) 등이었다. 그리고 신민부 개편안을 제출해 주요 간부회 신민부와 김좌진의 활동 보도 기사(『동아일보』1928년 11월 3일자) 김종진의 동지였던 이을규(왼쪽) 그가 김종진의 생애와 독립운 동 활동상을 기록한 『시야 김종진선생 전』(독립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