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page
56 2024년 9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머리가 영민하였기 때문에 부모를 비롯한 주 위의 기대 또한 매우 컸다. 1915년 서울 교 동(校洞)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전국의 수재들이 모여들던 경성고등보통학교에 합 격했다. 당시 이 학교에는 1920년 10월 청산리전 투에서 용맹을 떨친 철기 이범석이 재학하고 있었다. 또 같이 입학한 동기생들로는 동요 ‘반달’의 작가 윤극영, 무정부주의 독립운동 가로 이름 높은 박열, 그리고 공산주의 운동 가로 유명한 박헌영 등이 있었다. 경성고보 3학년 때인 1917년 일본인 수 학선생과의 알력으로 백지 답안을 제출하여 수학 과목 낙제로 유급을 당하였다. 나아가 1919년 3 · 1운동이 발발하자 여기에 적극적 으로 가담하여 만세시위운동에 앞장섰다. 그 러한 사실은 다음과 같은 경성지방법원 판결 문에도 잘 나타나있다. “심대섭(심훈) 외 60명은 손병희 등이 조선 독립을 선언하고 그 시위운동을 개시함을 듣 자 그 취지에 찬동하여 정치변혁을 목적으로 많은 군중과 함께 불온 행동을 함으로써 치안 을 방해하려고 기도하여 1919년 3월 1일 경 성부 파고다 공원에서 위의 조선독립을 선언 하고,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는 수천인의 군 중에 참가하여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면 서 경성부내의 각 곳을 광분하여 치안을 방해 하였다.” 3 · 1운동 참여, 8개월간 옥고. 그러나 더욱 강해진 독립의지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사정상 불참한 4인을 제외하고 태화관에 집결한 29인의 민 족대표들은 역사적인 독립선언식을 거행하 였다. 독립선언식은 이종일이 가지고 온 독립 선언서를 민족 대표들이 돌려보고, 한용운의 연설에 이어 만세삼창을 하는 것으로 간단히 끝났다. 하지만 탑골(파고다)공원에서는 수천 명의 학생과 시민이 모여 있다가 오후 2시 30 절은 시절의 심대섭(심훈) 심대섭 등 3 · 1운동 참가자 판결문(국가보훈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