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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엄씨대종회보 40호· 45 어느 일가분의 가족사 께 보관되어 있었다. 앞부분은 삭아서 복원이 불가능한 상태였지만 무려 67년을 한결같이 간 수했던 서한이다. 일기장은 일제 때 보급된 당용일기장(當用日 記帳)이었고 돌아가실 때까지의 7년간의 일기 다. 대체적인 내용은 병원에서의 주문량과 금전 출납 등 통상적인 일과와 일제강점기의 불편했 던 일들과 사업의 어려움도 함께 적고 있었다. 또 집안의 모든 대소사에 장손으로서의 처신을 고민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고 편모에 대한 효 심의 글들과 고부간 갈등의 일면을 지켜보면서 그 심경을 토로한 내용도 일기장 속에 끼워져 있었다. 종친의 할머니는 필자의 백모님이 되시고 만 영(萬永)공은 선고(先考)님이다. 백모님이 장 롱에 두고 간 유품들은 그때 필자가 모두 거두 어 지금까지 32년간을 보관하고 있다. 백모님 의 보관기간과 합산하면 일기장은 75년 서한문 은 99년의 긴 세월이다. 이 유품이 종친에게 전 달되지 못한 것은 당사자가 늘 외국에 체류하였 고 필자도 보관한 채 잊고 있었다가 책장을 정 리하던 중 다시 살펴보니 이미 지나간 세월의 아픔이지만 두분 청상의 고된 삶이 새삼 애처로 워 이를 공개하게 되었다. 백모님은 생전에 어린 손자가 사립문에 들어 서면“군수님 오시나”라고 했다. 시동생 만영공 은 총각 때 울산군의 백일장에서 장원을 했다고 자랑하곤 하셨다. 남편과 아들을 먼저 보내고 몰락한 집안의 발복을 염원한 기원이리라. 그러 나 믿고 의지했던 그 시동생마저 아들과 일년의 시차를 두고 유명을 달리했다. 그리고 그 손자의 마지막 관직(官職)은 울산 광역시 울주군 군수였다. ▲ 사진 上은 일기, 下는 서한문 ▲ 柱東公의 日記 중에서 子息을 爲하여 神經이 過敏하야 지신 어머니에게 何事를 勿걩하고 絶對復命할 것이다. 그 리 하야 神經을 極度로 安定하게 하는 것이 子息된 道理다. 母前에서 我는 母를 慰安하고 母主 (어머니)께서는 子婦를 貴愛하게 하시도록 하는 것이 子息의 일이다. … ▲ 萬永公의 書翰文 중 七言絶句의 일부 四 散 吾 人 壬 戌 秋 임술년 가을에 사방으로 흩어진 우리들 每 逢 佳 節 我 心 愁 매번 아름다운 계절을 만나도 내 마음 아득하여라. 朋 情 益 切 香 樽 席 벗의 정은 향기로운 술자리에서 더욱 간절하고 客 限 應 多 皓 月 걹 나그네의 한은 달 밝은 누각에서 더욱 깊어가네. 겭 誠 光 陰 容 易 失 참으로 광음을 놓치는 것이 쉬운 줄 알았건만 終 知 歲 月 此 中 流 마침내 세월도 이 가운데서 흘러감을 알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