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page
영월엄씨대종회보 43호 33 그래도 두 자릿수의 소문중에서 참여 약속을 받고 수단보 작성에 들어 가면서 참여 문중 을 더 늘리기 위해 주로 전화 수소문을 통해 입보 권장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통화 불통 이 많 았고 어쩌다 연결이 되어도 반응이 냉냉했다. 이런 현상이 우리 문중에만 국한된 일이 아 니라 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수단보를 완성하여 제출했던 문중에서까지 참여를 취소하는 사태 가 벌어지니 막막한 심정이었다. 그런 가운데도 추후 연결된 운초공<雲樵公>, 차준공<次 俊公 > 후손의 입보 참여는 큰 힘이 되었다. 임인보(壬寅譜 1962)를 가슴에 받아 안고, 다시는 누보 되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맹세하며 기뻐했던 선대 어르신들의 불같이 뜨겁던 열정은 지 금 어 느 누구에게서도 찾아지지가 않는다. 그렇지만 삼성당공계의 대동보 발간업무 추진은 내 몫의 일임이 분명하다는 결심에는 변함이 없었다. 단 몇 가구에 불과하더라도 삼성담공계가 누보 되지 않고 제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 또 하나, 우리 세대가 꼭 시행해야 할 일은 선대 어르신들께서 지켜오던 세 곳 큰 시제 참석 이다. 영월 시조공, 영월 총제공, 이천 사직공 산수(山壽) 시제에 삼성당공계에서 계속 참 석하 도록 하는 일이다. 2010년 영월 시조공 시제 때는 12명의 종친(주삼, 주성<자 영섭 동행>, 주진<모친 고 금월, 제수 홍영순 동행>, 장섭<자 기원 동행>, 도섭, 다섭<처 김현정, 장녀 영주 동행>)이 참석 했다. 오랫만에 여러 종친과 그 가족까지 참석하여 삼성당공계 선대 어르신들께서 시조공 묘 역 성 역화에 협조했던 내역이 새겨진 석비를 보면서 각자 선친들의 열성을 확인한 기회가 주 어져 흐뭇했다. 내년에는 더 많은 종친이 참여하도록 노력하자는 다짐도 했다. 총제공 시제에 는 주 삼(柱三 진웅)과 주승(柱昇 주진) 두 사람이, 사직공 시제에는 주삼 혼자서 참석했다. 이 천을 찾아갔을 때는 남당공계 을룡 회장을 만나 사직공 묘역의 안내를 받았다. 을용 회장이 보 관하 고 있던, 조선조 중종이 사직공 산수에게 내린 교지 사본을 감격하며 받아왔다. 우리 선대 기묘유현(己卯儒賢) 용공(用恭)은 사직공(司直公) 산수(山壽)의 셋째 손자이 고, 용 순(用順)은 넷째 막내 손자인데, 장손자 용관(用寬)이나 둘째손자 용홍(用弘)이나 셋째 손 자 용 공(用恭)이 각자의 사정 때문에 모두 이천을 떠났고, 넷째 손자 용순(用順)만이 이천(利 川)에 남아 고향을 지켜냈으니 장하고 감사한 일이다. 총제공손종회 총무직을 맡고 있는 족손 (族孫) 영월엄씨 복야공파 삼성당공계, 끊기지 않는 여정(꿈을 실현해 가는 발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