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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순국선열 • 구연영 선생 55 각 나누어 맡았다. 서울의 군사적 요충지인 남한산성이 의병 의 수중에 떨어지자, 일제 당국은 큰 충격을 받고 이를 탄압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다 급해진 일제는 조선 정부로 하여금 강화도 에 주둔하던 정예 관군 300여 명을 남한산 성으로 증파하도록 하여 성을 에워싼 채 의 병을 압박하였다. 성 안의 의병과 성 밖의 관 군 간에는 연일 크고 작은 전투가 산발적으 로 계속되었다. 하지만 전투 때마다 지리적 으로 우세한 의병에 전황이 유리하게 돌아갔 다. 관군은 기습 작전을 펴기도 하고 화공을 계획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공략전을 벌였으 나, 그때마다 의병의 반격으로 번번이 격퇴 당해 성에 접근할 기회조차 얻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남한산성의 의병은 4월 3일 관군의 총공격을 받고 패산하고 말았다. 철옹성과 같던 남한산성 공략이 여의치 않자, 관군은 비밀리에 김귀성을 통해 박준영을 매수하였 다. 의병장 박준영에게는 광주유수(廣州留守) 를, 좌익장 김귀성에게는 수원유수를 제수한 다는 미끼로 이들을 매수한 것이다. 새벽 이 미 정해진 계획에 따라 박준영이 서문과 북 문을 열자 성 밖에서 대기 중이던 관군들이 함성을 지르며 일시에 성 안으로 몰려들었 고, 당황한 의병들은 전열을 정비할 틈도 없 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남한산성 함락 후에는 동지들과 함께 잔 여 의병을 수습하여 전열을 가다듬은 뒤, 김 하락을 의병장에 추대하여 영남 지방으로 내 려갔다. 4월 9일 동지들과 함께 남행길에 올 라 여주를 지나 제천·단양·풍기·순흥 등지를 차례로 거쳐 4월 20일 경 안동 부근까지 이 르렀다. 이때 유인석이 거느리던 제천의병의 한 분파인 서상렬(徐相烈) 부대로부터 연합 설립 초기의 상동교회(상동교회 제공) 전덕기(1875~1914) 목사 (위키피디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