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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근대 대구의 애국계몽운동과 그 한계 55 1910년대 대구지역 독립운동은 비밀결사인 조선 국권회복단과 광복회가 주도하였다. 달성친목회를 계승하여 1915년 정월 15일 결성된 조선국권회복단 과 같은 해 7월 15일 결성된 광복회는 만주의 독립 운동기지를 지원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대 독립운동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항일 투쟁을 통해 일제에 대한 저항 주체로 성장하였다. 이것은 대한제국기 애국계몽운동과 의병전쟁을 통 한 국권회복운동에서 축적된 이념과 경험을 계승·발 전시켜 1910년대 독립운동의 내부적인 역량으로 승 화시킨 결과였다. 나아가 1919년 3 · 1운동과 1920년 대 국내‧외에 걸쳐 전개된 항일독립운동의 원류가 되었다. 대구시 동구 효목동에 건립된 대구경북항일운동 기념탑(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대구에서 교남교육회, 달성친목회 등에서 활동하는  한편, 조선국권회복단 창립 임원으로 활동한 서상 일의 동상(브레인미디어 제공)  영남대학교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근현대사·독립운동사 전공으로 대경대학교 교수, 경상북도·대구시 문화재전문위원 등을 지냈으며, 국 가 보훈부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1910년대 국내 독립운동』(독립기념관, 2008), 『경북독립운동사』 (경상북도, 2012), 『희고 흰 저  천 길 물속에 김도현』(독립기념관, 2012), 『목숨바쳐 나라를 사랑한 선비 왕산 허위』(경북독립운동기념관, 2014), 『한계 이승희의 생애와 독립운동』(성주문화원, 201 8),  『근대 대구의 애국계몽운동』(선인, 2021) 등이 있다. 필자 권대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