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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순국선열 • 이수흥 의사 55 10월 20일에는 경기도 이천군 현방(玄方) 경찰 주재소를 습격하여 일본인 순사부장 모리마쓰 (森松)을 쏘아 쓰러뜨렸다. 그리고 그 옆에 있 는 백사면사무소를 습격하여 면서기 송천의 (宋天義)를 사살하였다. 그는 이후 새로운 계 획을 위해 변장하고 서울로 피신하였다. 10월 25일에는 동지 유택수로 하여금 서울 수은동 에 있는 대성호(大成號) 전당포를 습격하여 군 자금을 모집하도록 했다. 이수흥은 채상덕의 유지를 받들어 이처럼 대담한 특공작전을 전 개, 일제 경찰과 행정 당국을 응징한 것이다. 그러나 부친의 부음(訃音)을 듣고 부득이 수원으로 가서 발상하였다. 이때 이천경찰서 장 카와키(河岐)는 범인의 신장이 불과 5척이 라는 말을 듣고 관내에 거주하는 신장 5척되 는 사람을 모두 조사하게 했다. 이에 따라 경 찰 3천여 명이 동원된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 다. 계엄상태의 3개월 동안, 4차례의 특공작 전을 신출귀몰한 수법으로 흔적도 없이 수행 하던 그는 결국 동지 유택수와 함께 1926년 11월 6일 체포되고 말았다. 믿었던 6촌형의 밀고로 이천경찰서장 카와키 등이 그를 사로 잡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3년 여의 예심 끝에 1928년 7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29년 2월 27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 국하였다. 그는 법정 최후진술에서 “우리 동 포 여러분들은 끝까지 싸워 우리나라의 독립 을 성취하여 주시기 바란다.”라고 비장하게 말하여 방청객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❶  이수흥이 공격한 백사면시무소 ❷  이수흥이 사용한 권총 ❶ ❷ ❸  이수흥과 유택수 재판 관련 『동아일보』 기사(1928.6.29)  ❹ 재판정에 몰려든 방청객들의 모습 ❸ 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