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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2025년 2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쪽 입구를 지켜 전력을 다해 싸웠지만, 불리 한 전세를 돌이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현 전투 패산 후에는 원주 방면으로 이 동하여 재기를 모색하고 수백 명의 군사를 모았다. 이때 김하락은 심상희(沈相禧)가 이 끄는 여주의병을 찾아가 재기 항전을 협의하 였다. 이 때 대장 민승천은 죽산으로, 그리고 조성학은 영남 방면으로 내려가 각기 재기 방략을 찾고 있었다. 이후 사방에 흩어져 군 사를 모아온 민승천 · 신용희 · 전귀석 · 김태원 등과 함께 1896년 2월 25일 광주 이현에 다 시 모여 재기항전을 천명하였다. 이때 모인 의병 수는 2,000여 명에 이르렀다. 새로운 의 병대장에 박준영(朴準英)을 선임하였다. 한편, 이 무렵 광주 일대에서는 연합 의병 과는 별도로 심진원(沈鎭元)을 주장으로 한 의병부대가 별도로 편성되어 2월 23일 남한 산성을 장악하여 활동 근거지로 삼고 있었 다. 그러나 광주의병은 참령(參領) 장기렴(張 基濂)의 인솔하에 서울에서 출동한 관군의 공 세로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이에 심진원은 이천 연합 의병에 서한을 보내 합세를 요청 하였고, 여기에 호응하여 이천 연합 의병은 2 월 28일 관군의 포위망을 뚫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광주의진과 합류하였다. 남한산성 점거, 영남의병과 연합항전 전개 남한산성 점령 후 의병 지휘부에서는 적의 내습에 대비해 요충지마다 군사를 배치하고 수성에 만전을 기하였다. 수비구역을 분담할 때에는 중군장으로서 의병의 본부가 있는 중 앙부를 맡아 지켰다. 그 외 선봉장 김태원은 남문을, 후군장 신용희는 북문을, 우익장 김 경성은 서문을, 좌익장 김귀성은 동문을 각 구연영이 참여한 이천수창의소 의병부대가 점령한 남한산성의 남문 일대 전경(오피니언 뉴스 제공) 이천수창의소 의병부대 도지휘를 맡은 김하락 의병장 초상화(독립기 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