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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2023년 9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동국역사』를 등사기로 찍어서 학우들에게 몰래 나누어 주었다. 일제가 금서로 지정한 책이어서 3회 차 배부 때 경찰에 발각되어 요 주의 인물로 지목받고 감시대상이 되었다. 부산의 구세단 동지들 규합 독립운동 모색 의열단 입단 후 일제 타격위해 부산으로 입국 1915년 최천택 · 오택 · 김인태(金仁泰, 이명 김철성(金鐵城)) 등 친우 16인과 함께 비밀결 사 구세단(救世團)을 조직했다. 그리고 매월 한 차례 등사판의 단보(團報)를 내고 경남 일 원의 뜻있는 청년들에게 보내 동지 규합을 도모하며 자체 수양회 · 연수회를 갖는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반년 만에 그 사실 이 경찰에 탐지되어 오택 · 김인태 · 박흥규 3인 과 함께 붙잡혀 구금되고 모진 고문을 당했 다. 부모들의 구명운동으로 일주일 후 풀려 났다. 1916년 4월 부산와사(瓦斯, 가스)전기회사 의 전차 차장으로 취직했다가 곧 그만두고, 경북 왜관의 친척 박국선(朴國善)이 경영하는 곡물점에 들어가 일했다. 그러다가 1917년 6 월 주인에게 700원을 차용하여 중국 상하이 (上海)로 건너갔고, 영어를 익혀 미국으로 건 너가려 했는데 좌절되었다. 1년 후 1918년 6 월에 귀국하여 부산에서 2개월 여 지낸 후 다 시 상하이를 거쳐 필리핀으로 건너가 일본계 남양무역회사의 직원이 되었다. 1920년 4월 상하이로 돌아와 7월까지 머 무르던 중, 육영학교를 같이 다녔던 친구 김 병태를 통해 의열단장 김원봉(金元鳳)으로부 터 독립운동 가담을 권고받았다. 이 제안을 수락해 의열단에 입단하였고, 가사 정리를 위해 7월 19일 부산으로 돌아왔다. 의열단은 1919년 11월 만주 지린(吉林)에서 창립되어 중국 관내지역과 국내, 일본을 주무대로 활 동했는데, 1920년대 전반기 강력한 ‘암살과 파괴’ 방식으로 의열투쟁을 벌인 대표적 독립 운동 단체로 유명했다. 의열단의 제1차 국내 일제기관 총공격 계 획이 일본 경찰에 탐지되어 6월 이래 20명 가까운 단원 및 조력자들이 검거 · 체포되었 다. 또 폭탄도 압수된 사실(밀양폭탄사건)이 7월 30일 조선총독부 경무국에 의해 공표되 었다. 이후 김원봉이 송금한 여비 100원을 찾아서 8월 6일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 편 으로 일본 시모노세키(下關)로 간 뒤, 모지(門 司)를 거쳐 세번째로 상하이로 건너갔다. 상하이에서 김원봉으로부터 다수 동지를 체포한 일제 경찰에 복수하고 의열단의 건재 함을 보여주기 위한 부산경찰서 투탄거사를 지시받았다. 아울러 러시아산 1902년 식의 주철제(鑄鐵製) 원통형 폭탄 1개와 자금 300 원을 받았다. 이 자금으로 부산경찰서장 하 시모토 슈헤이(橋本秀平)가 좋아한다는 중국 고서들을 구입하여 고리짝에 넣고, 폭탄도 돈 50원과 함께 밑바닥에 감추어 넣은 뒤 8 월 31일 상하이를 떠났다. 기선을 타고 일본 나가사키(長崎)로 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