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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엄씨대종회보 43호 31 로 바꾼 묘역이 나타났다는 기사가 있었다. 이게 남의 일 같지 않은 심정이었다. 버티고 버 티던 우리도 멧돼지의 횡포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묘역을 옮기자는 의견이 커졌다. 방법은 간단 했다. 벽척동 숭모당의 맨 위칸에다가 세 분의 유골함을 모시자는 것이었다. 나는 절대 반대했 다. 격 에 맞지 않는다는 지론과 현 위치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였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갈 곳은 역시 벽척동 뿐이었다. 월출산 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이르는 곳이 벽척동이니 월출산의 기가 그대 로 뻗어 내렸다. 숭모당 위치가 산기슭 낮은 곳이니 그보다 좀 더 높은 곳에 길지(吉地)를 찾아 묘역을 성역화 수준에 맞춰 조성하기로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자금 마련을 위해 유치면 내리 산 1번지 시향산에서 수몰을 면한 산지를 매각하기로 산림청과 협의가 끝나 매도 신청을 마쳐 놓았다. 2025년 산림청의 예산 배정이 끝나면 바로 공사를 시작하기 위해 준비중이다. 지 금까 지 세 곳으로 나뉘어 있던 묘역을 찾아 다니며 지내던 시향제는 진행이 어려웠었다. 그러 나 이 제 벽척동 묘역으로 통합이 되면 더 많은 종친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동안에는 시제 참석자들이 병영면을 중심으로 한 연고자에 국한되어 있었다. 32 소 문중 중에서 간송공(澗松公) 류( 瑬 22세)와 춘원공(春園公) 영(瑩 세 22세)의 후손들로 국한되 어 왔 다. 그도 그럴 것이 삼성당공 묘역이나 수몰된 농암동 묘역의 일부와 벽척동 묘역에 안 장된 분들이 모두 간송공(澗松公)과 춘원공(春園公) 후손이고, 나머지 분들은 외지에 자리잡고 있다 보니, 묘역도 거주지 중심으로 가족단위의 묘역이 조성되었고, 가족묘지 참배 위주로 소 규모 시제가 이루어 질수 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삼성당공 묘역 성역화와 함께 32 소문중이 단합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간절하게 빌어본다. 3) 새 영월엄씨 대동보 발간 소식을 접하다. 다음으로 내가 방문할 곳은 그동안 연계관계가 끊겼던 대종회였다. 2010년 3월 15일, 삼 성당 공 묘역 참배, 강진상하수도측과 작천면 배수장 설치건을 확정 짓고 나자 4월 중순에 영월엄 씨대 종회(寧越嚴氏大宗會)로 이름이 바뀐 논현동 대종회 건물(奈城빌딩)을 찾아갔다. 삼성당공계 (三省 堂公系)가 살아있음을 신고하러 간 것이다.(등록 완료 : 등록번호 9-4). 이전에 남의 건물 한 귀퉁 이에 세들어 일하던 시절에는 상상도 못한 6층짜리 빌딩을 보는 순간 가슴이 벅차 올랐다. 그동안 몇 차례의 보첩작업 결과로 모아진 잉여금을 잘 관리한 결과로 이 큰 빌딩을 마 련해 영월엄씨 복야공파 삼성당공계, 끊기지 않는 여정(꿈을 실현해 가는 발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