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page

Special Theme • 안창호의 독립운동 방략과 실력양성론 53 (유일당) 결성을 주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의 민족유일당운동도 어려워지자 먼저 우파 독 립운동가 중심으로 한국독립당을 결성하고, 이를 기 반으로 ‘대독립당’ 건설을 추진하였다. 안창호의 독립운동 방략 안창호는 1920년 전후 시기 독립운동 세력의 무 장투쟁론 · 교육산업우선론(실력양성론) · 의열투쟁 론 · 무정부주의론 · 외교론 · 준비론 등 다양한 노선간 의 사상적, 방법론적 갈등을 극복해 각 노선간의 대 립을 피해 조화롭게 공존하며, 서로를 수용하는 상 호보완적 역할분담과 상황대처론을 펼쳤다고 평가 된다. 그의 독립운동 방략은 독립투쟁 과정에서 여 러 상황과 경우를 경험하고 대처하는 가운데 나름대 로 구축된 신념의 결실로 볼 수 있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분열과 반목이 아닌 연대와 통 합을 위해 노력한 안창호의 독립운동 방략과 그 노 선은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다. 특히 그를 단순히 ‘실 력양성론자’로 치부하며 그 한계를 지적하는 종래의 연구 및 평가 경향도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그 는 독립전쟁을 위한 준비, 실력양성을 추구했다 는 점에서 ‘점진적 독립전쟁론자’로 분류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한국독립운동사 및 한국근대사, 세계 약소민족 해방운동사에서 큰 의의를 가진 통일 · 통합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한 위대한 업적을 내고 한 국 독립운동을 지도한 걸출한 민족지도자가 바로 도 산 안창호다. 온 민족이 안창호의 숭고한 희생과 애 국정신을 깊이 새겨서 진정한 독립과 민족 통일의 정신적 원동력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총회 직후 기념촬영한 안창호(앞줄 가운데)와  주요 임원들(독립기념관 제공) 월간지 『개벽』(1922년 5월호)에 실린 이광수의 「민족개조론」(한국 일보 제공). 안창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광수는 독립을   준비하고 실력을 키워야 한다면서도 ‘민족개조’를 주장했다. 그러 나 그의 ‘민족개조론’은 안창호의 생각과 큰 차이가 있었다. 독립기념관 연구원과 성균관대학교 연구교수, 동북아역사재단 한일관계연구소 장 · 수선사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현재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수석연구 원, 동북아역사재단 명예  연구위원, 월간 『순국』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중국 동 북지역 독립운동사』(2022년 독립기념관 학술상 수상) · 『봉오동 · 청산리전투의 영 웅 - 홍범도』 · 『일제강점기 고등교육정책』(공저) ; 「1920년대 이상촌 건설운동과  안창호」,『도산학연구』 10집(2004) 등 다수의 논저가 있다. 필자 장세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