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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2025년 1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독립운동의 목표와 방법론 재조명’ 1920년대 안창호의 내몽고 · 만주지역 독립군기지 (이상촌) 개척운동 안창호의 이상촌 운동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신민회 시절부터 구상되었다. 특히 이러한 구상은 1910년 8월 대한제국이 일본에 멸망한 직후부터 구 체적으로 그 실천방안이 모색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안창호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던 손정도가 안 창호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그 일부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손정도는 1911년 12월 25일 안창호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점진적 독립운동 추진계획을 피력하였다. 또 김규식(金奎植)은 1914년 몽골의 후레에 군관학 교를 세우기 위해 그곳을 방문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러한 사실은 1914년 3월 14일 김규식이 안창호에게 보 낸 편지에서 계획한 일들이 시기하는 무리들의 방해 로 차질을 빚고 있고, 그 때문에 4 · 5개월동안 무료하 게 지내고 있음을 비탄하고 있는 내용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金成(김규식)이 안창호에게 보낸 편지」 (1914.3.14). 한편, 서간도의 백서농장(白西農庄)은 당시 민족운 동가들에게 일종의 ‘모범촌’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양기탁은 백서농장을 ‘모범촌’으로 부르 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이상촌 건설운동의 일환이 라고 평가할 수 있다. 1923년 국민대표회의가 결렬된 후 안창호는 일단 임시정부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1925년경 중국 남 방의 남경(南京)에 동명학원(東明學院)을 설립하는 등 이상촌 건설을 모색하였다. 특히 1926년 3월 ‘조 선총독부 경무국장이 외무성 아세아국장에게 통보 한 요지’라는 문서는 안창호와 이탁(李鐸, 본명 李濟 鏞) 등이 토지경영계획을 세우고 구체적으로 대상지 를 물색하는 등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안창호는 흥사단 및 부속 동명 학원을 기초로 하여 임시정부 교통총장을 지낸 이탁 과 협의하고 길림성 액목현(額穆縣) 교하(蛟河) 부근 에서 논을 매수하여 이를 경영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는 것이다. 이탁은 이를 위해 1926년 1월 현지 답사 를 마치고 안창호에게 보고한 뒤, 안창호를 동반하 고 액목현 현지에 이르러 수전(水田) 경영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파악했다. 주목되는 내용은 안창호가 재 미 흥사단에서 보관중인 약 2만 원의 자금을 갖고 돌 아와 만주지방에서 토지를 경영하려고 시도하고 있 다는 것이다. 이상촌 건설운동은 장기적으로 보면 군사투쟁 의 일환이기도 했다. 1920년 5월 9일의 일기를 보 면 “김약산군(김원봉―필자)이 내방함에 작탄(炸彈) 사용을 단독적으로 하시(何時)에나 기율 없이 사용 치 말고, 군사당국에 관속(款屬)하야 실력을 점축(漸 蓄)하였다가 상당한 시(時)에 대거(大擧)하기를 주의 하라 하다”라고 밝히고 있다. 안창호 역시 장기적으 로는 무장투쟁론을 견지했다고 할 수 있다. 일부 신 문기록에는 안창호의 명령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다 가 체포된 인사의 재판내용이 보도되는 경우도 있다 (『동아일보』1921년 2월 23일자). 따라서 안창호의 준비는 군사적 투쟁을 위한 대비의 성격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 1924년 초 안창호는 유명한 「동포에 고하는 글」 을 발표하고 1927년 경부터 ‘대공주의(大公主義)’를 제창하며 좌 · 우파 민족운동 진영의 단합과 대독립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