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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2024년 12월 Special Theme  정의부 창립 100주년 기념 특집 ‘만주 독립운동 세력의 국내 진공’ 사령에는 양세봉, 선전대 대대장에는 김광옥(金光玉) 이 취임하였으며, 양측은 연합작전을 통해 약 200여 차례에 달하는 대 · 소 전투를 전개했다고 한다. 선전대에서는 중국어 신문인 『合作(합작)』을 비롯 해 각종 벽보와 표어, 전단 등을 배포해 항일의식 고 취에 힘을 기울였다. 또한 조선혁명군에서는 민중자 위군 사령부 소재지인 통화현 강전자(江甸子)에 속성 군관학교를 설치하여 400여명의 장교와 사병을 양 성하는데도 힘을 기울였다. 아래의 <표 1>은 조선혁 명군이 1932년 4월부터 8월까지 민중자위군의 이춘 윤부대와 전개한 중요 전투이다. 국내언론에서도 최근 ‘국민부는 반만군 황작급(黃 作及) · 보국(保國) 등과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하였으 며, 환인현과 관전현 현경(縣境)에 근거를 두고 있는 반만군 점동변(占東邊)의 부하 70여명과 조선혁 명군 부사령 박대호가 인솔한 80여명이 연합하여 활동하 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이후 조선혁명군의 양세봉의 지휘 하에 1933년 7 월 7일에는 일본군이 영릉가 석인구(石人溝) 깊은 골 짜기에 진영을 구축하고 있던 조선혁명군 사령부에 대해 공격을 가해 온 일본군 40여명을 사살하고 중 포 1문, 경기관총 3정, 소총 80여정을 노획하였다. 7월 중순에는 한 · 중연합군으로서 노구대(老溝臺)를 점령하고 있던 일본군 1개 연대를 공격해 2일간의 격전을 치른 끝에 물리쳤다. 이밖에 중국의용군 등철매(鄧鐵梅)부대로 부터 폭 탄을 입수해 심해선(瀋海線) 철도와 압록강 철교 폭 파 등을 시도하였으며, 한 · 중연합부대의 일원으로 시간 지점 조선혁명군부대 요녕민중자위군부대 전과 4~5월 신빈현 노성 최윤구‧조화선 부대 “ 80여 명 적 살상 신빈현 영릉가 “ “ 2일간 적과 교전 6월 신빈현성 부근 양세봉 부대 “ 신빈현성을 3차례 탈점 청원현 경내 최윤구 부대 “ 일‧만군과 10여 차례 교전 집안‧임강현 김광옥 부대 손수암 부대 일‧만군과 30여 차례 교젼 환인현 아하 문영찬 부대 5로군 일‧만군의 공격을 수차 격퇴 7월 상순 신빈현 석인구 양세봉 부대 이춘윤 부대 일‧만군 40여 명 살상 7월 중순 무송현 노구태 미상 불참 일‧만군 거점을 습격 7월 하순 통화현 쾌대무 최윤구‧조화선 부대 불참 일‧만군 80여 명 섬멸 8월 청원현마산위자 조화선 부대 불참 일‧만군 36명 섬멸 <표 1> 1932년 4~8월 조선혁명군이 행한 중요 전투 출처: 신빈만족(滿族)자치현민위(民委) 조선족지편찬조 편, 『신빈조선족지』, 요녕민족출판사, 1994, 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