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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2024년 11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설은 한원진의 주요 사상인 인물성이론에 영 향 받은 바가 크다. 이에 따라서 그의 학문적 성격은 ‘척이단적(斥異端的) 화이론(華夷論)’ 과 절의론이 강하게 나타났다. 김복한은 「복 암선생묘지명」에서 자신의 내종형이며 동시 에 동지이기도 했던 이설을 “율곡과 남당의 충신”이라고 평했다. 남당 한원진의 사상적 영향을 받은 이설은 서세동점의 민족적 위기에 위정척사론을 확 립 발전시켰다. 일반적으로 위정척사론은 정 학(正學, 주자학)을 지키고 사학(邪學)을 배척 함을 의미한다. 이설은 주자학을 철저히 신 봉했는데, 천주교를 사학으로 보았으며, 불 교에 대해서는 ‘위정척사’라는 용어를 사용 하면서까지 이를 비판하였다. 이설의 사상적 특성은 충군애국사상이라 할 수 있이다. 이설의 이러한 의식은 그가 남 긴 시에서도 잘 나타난다. 모두 330여 편에 달하는 시에서 그의 화이론과 절의론(節義論) 에 입각한 충군애국사상을 알 수 있다. 한편 이설의 사상적 특성은 현실 비판적이란 점에 서 주목된다. 그의 비판 대상은 심지어는 군 주인 고종(高宗, 광무황제)까지 미쳤다. 이설 은 당시 현실에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 다. 그 대표적 사례는 그가 1906년 죽기 직전 에 작성한 「유소(遺疏)」에서도 볼 수 있다. “성상(聖上)의 자질이 총명하지 못한 것이 아니며, 성덕이 슬기롭지 않음이 아니나, 재 물에 마음을 쓰시고 학문에는 마음을 쓰시지 않은 결과, 재위 40년간 한 가지라도 칭송할 만한 것이 없고 한 가지 정사도 기록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미루어 나가다가 퇴폐하여 시들어 버리고, 어둡고 막히어 조종(祖宗)께 서 이루어 놓으신 제도를 땅에 떨어져 없어 지게 하고, 느즈막에 금일에 이르러 망국(亡 國)의 임금에 불과하니 한탄스럽습니다.” 이설은 이 「유소」에서 고종이 재위한지 40 년이 지났으나 칭송할 만한 정사가 한 가지 도 없으며, 이로 인해 결국은 망국의 임금(망 국주, 亡國主)에 불과하다고 망국의 책임을 묻는 등 매우 과격한 언사를 동원하여 고종 의 실정과 부덕을 비판하였다. 과거 급제 교지(홍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