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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2024년 9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은 후일 ‘치욕을 알면 피로써 죽을 수 있고, 치욕을 씻으려면 피로써 씻어야 한다’는 투 쟁적 신념으로 바뀐다) 이리하여 신규식은 자결을 결심하고 독약 을 마셨으나, 문을 부수고 들어온 가족들에 의해 겨우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약 기운이 번진 오른쪽 눈은 시신경을 다쳐 마비되고 말았다. 눈동자가 옆으로 치우친 애꾸가 되 었다. 거울을 들여다 본 신규식은 냉소를 지 었다. “애꾸, 그렇다. 이 애꾸눈으로 왜놈들을 흘 겨보기로 하자. 어찌 나 한 사람만의 상처이 겠는가. 우리 민족의 비극적 상징이다.” 문동학원 설립 후 1911년 초 상하이 망명, 독립투쟁 이때부터 청년 신규식은 흘겨볼 예(睨)자, 볼 관(觀)자를 합친‘예관(睨觀)’으로 자호(自 號)를 삼아 끝까지 사용했다. 이후 그가 몸소 실천한 일들은 주로 구국계몽운동 관련 활동 이었다. 향리에 문동학원, 덕남사숙의 설립 또는 지원, 중동(中東)학교장 취임, 공업전습 소생들을 중심으로 한 ‘공업연구회’ 조직, 월 간 『공업계』 창간, 윤치성 · 민대식 등 퇴역장 교를 규합한 황성광업(廣業)주식회사 설립 운 영, 민족종교인 대종교(大倧敎) 입교, 분원 자 기공장의 설립과 고려자기 재현운동 등이 바 로 그 사례이다. 그러나 1910년 이른 바 ‘보호’라는 양(羊) 의 탈을 쓰고 있던 일본 당국은 본색을 드러 냈다. 바로 ‘경술국치(庚戌國恥)’로 불리는 대 한제국의 멸망이 그것이다. 대한제국은 통째 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신규식은 다시 한번 자결을 생각했으나 마음을 고쳐먹 고 1911년 초봄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 운명할 때까지 12년여 동안 위대한 업적을 신규식이 소지하고 있던 태극기(독립기념관 제공)   신규식이 중국에서 사용하던 명함 ‘예관’이란 자호가 아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