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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2023년 7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단 기밀부 특파원에 자원하였다. 1923년 12월 20일 밤, 소형 폭탄 3개와 나 카무라 히코타로(中村彦太郞)라는 가명의 일 본인 명함 30매를 가지고 윤자영(尹滋英)의 알선으로 미쓰이(三井)물산 소속의 석탄 운반 선 텐조산마루(天城山丸)를 타고 상하이를 출 발하였다. 이 해 12월 31일 밤 일본 후쿠오카 에 도착한 뒤에 1924년 1월 3일 밤 에다미츠 (枝光)역을 출발하여 의거 장소인 도쿄(東京) 로 갔다. 1월 5일 아침 도쿄에 도착했는데, 도중에 제국의회가 무기 연기된 사실을 알고 왕궁 폭파를 결심하였다. 1월 5일 낮, 도쿄 지도에 서 왕궁을 찾아본 뒤 히비야(日比谷)공원에 도착하여 왕궁 정문인 사쿠라다몬(櫻田門)과 니주바시(二重橋)를 실지 확인하였다. 이후 점심을 먹고 세이코우겐(淸光軒)에서 이발을 하고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침략의 아성 일본 궁성에 폭탄투척 의거, 지바형무소에서 순국 같은 날 오후 7시 20분경, 양복 주머니에 3 개의 폭탄을 감추고 니주바시 부근에 다다랐 다. 이때에 순찰 중이던 히비야경찰서의 오 카모토 시게요시(岡本繁榮)순사가 불심 검문 을 하려고 하였다. 이에 폭탄 하나를 꺼내 안 전핀을 뽑고 순사에게 던졌다. 순사가 멈칫 하는 순간 주머니에서 나머지 폭탄 두 개를 양손을 꺼내 들고 왕궁 정문 앞 다리로 뛰었 다. 정문 앞 석교에 다다르자 왕궁을 지키던 일본군 위병 두 명이 양쪽에서 총을 겨누면 서 뛰쳐나왔다. 다급한 나머지 안전핀을 뽑 지 못하고 폭탄을 던졌다. 그러나 3개의 폭 탄 모두가 불발되었고, 그 자리에서 격투 끝 에 붙잡혔다. 1월 6일 오전 밤새 히비야경찰서에서 조 사를 받고 기소되어 검사국으로 송치되었 다. 조사 과정에서 가혹한 고문을 받고, 예심 에 회부되어 이치가야(市谷)형무소에 수감되 었다. 1월 7일 국내의 『조선일보』와 『동아일 보』가 ‘이중교(二重橋) 투탄 의거’에 대해 일 본 내무성 공표를 인용하여 보도하였다. 2월 2일 고문의 후유증으로 병감에 수용되었다. 금산재판소 서기 시절 김지섭과 부인(독립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