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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2023년 3월 Special Theme 국민대표회의 100주년! 민족운동 세력의 통합과 혁신을 도모하다 를 독립운동 통할체계에 맞게 개조해야 한다고 인식 했기 때문이다. 두 입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회의는 난항을 겪었다. 이에 김동삼을 비롯한 핵심인사들은 비교적 쉬운 현 안에 대한 논의나, 분 과별 회의로 방향을 돌리며 돌파구를 찾 고자 하였다. 그러 나 이 문제는 5월 들 어 다시 중심 논란으 로 떠올랐고, 끝내 강 경한 대립으로 치달 았다. 상황이 이에 이 르자 서간도지역 독 립운동계는 대표들을 소환하기로 결정했다. 양쪽의 논쟁이 해결될 기미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결정에 따라 의장 김동삼을 비롯한 비서장 배천택, 그리고 이진산(李震山)·김형식 등은 만주로 돌아왔다. 만주로 돌아온 김동삼은 1924년 10개 단체의 대 표를 모아 전만통일회의주비회를 개최하고 의장으 로 활약하였다. 또한 그해 11월에는 정의부(正義府) 를 탄생시키고, 정의부 중앙행정위원 겸 외무위원장 을 맡아 독립운동을 이끄는 최고지도자로 활약하였 다. 그 뒤 1931년 하얼빈에서 체포될 때까지 단체와 각종 회의의 요직을 맡아 독립군 단체를 통합하는 데 온 힘을 다했다. ➌ 김동삼의 통의부 총장 당선기사(『동아일보』 1923년 1월 21일자) ➍ 김동삼의 국민대표회의 의장당선 보도(『독립신문』 1923년 1월 31일자) ➍ ➌ 국민대표회의에 참가했다가 만주로 돌아간 김형식 필자 강윤정 안동대학교 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학예연구부장을 지냈으며, 현재 안동대학교 사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 근대의 여걸 남자현」, 「신흥무관학교와 안 동인」, 「1920년대 안동지역 여성단체와 활동」 등의 논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