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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이승만의 귀국과 대한민국 정부수립 51 핀 지역에서 사령관, 군사고문직을 거쳤고, 2차 대전 종전 직후 1951년 4월 해임될 때까지 약 20여 년을 아시아지역에서 근무했다. 해방 후 이승만의 조기 귀국과 맥아더의 후원 태평양 전선에서 주요 역할을 담당한 맥아더는 전 후 필리핀, 일본, 대만, 한국 등 아시아 반공주의 국 가의 지도자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필리핀에서는 케존과 로물로, 대만에서 는 장제스[蔣介石], 일본에서는 요시다 시게루[吉田 茂], 한국에서는 이승만 등이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패망과 함께 태평양미육 군사령관은 맥아더로서 그는 당시 연합국최고사령 관 총사령부(GHQ/SCAP)과 기타 주요 직위를 겸하 고 있었다. 이 시기 이승만은 맥아더의 도움으로 해외유력 망 명인사들 가운데 최초로 귀국하였다. 특히 귀국길에 이승만은 1945년 10월 13일부터 3일 동안 일본 도 쿄에 체류하며 당시 맥아더 및 하지와 만나 한국정 세에 대해 논의했다. 맥아더와의 연계를 통한 이승 만의 조기 귀국은 정치적으로 이승만의 남한 정계 부각에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이 시기 미군정 당국에서는 상부에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 문제를 재고해 주기를 요청했다. 1945년 12월이 들어서자 신탁통치에 대해 남한 정계에서 이 를 구체적으로 반대하려는 움직임이 존재했다. 그 중심인물이 바로 이승만이었다. 한편 맥아더는 신탁 통치에 대한 한국 내의 반응을 기록한 하지의 보고 를 받고 이를 미 합동참모본부에 통보했다. 하지만 맥아더는 하지와 함께 모스크바 결정서의 이행에 대 필리핀의 외교관 · 정치가, 카를로스 로물로 장 군(1899~1985, 필마스터 제공). 1949년부터  1950년까지 유엔 총회 의장이었던 로물로는  6 · 25전쟁 당시 필리핀의 한국 파병에 중요한 역 할을 하였다. 한국인들의 신탁통치반대 시위운동 모습(한국학 중앙연구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