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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독립전쟁 50년의 거룩한 울림 독립지사들이 최초로 도착한 중국 단동시와 압록강 신의주 단동시를 연결하는 압록강 철교. 1911년 완공 요녕성 관전현 보달원진 요녕성 관전현 혼강 반라초 요녕성 환인현 횡도촌 유하현 삼원포 대고산 유하현 삼원포 추가가촌 일제경찰의 압록강 검문 단동시 옛 시가지 단동시 옛 마차역 항일독립지사들이 건넜던 압록강 현재모습. 신의주와 단동시 사이 6도구 경북 안동 이상룡, 김대락, 김동삼 등의 안동 혁신 유림과 서울의 이회영 형제, 이동녕 등의 애국지사 들이 만주로 망명한 목적은 오직 나라를 다시 찾고 자 하는 열망과 의지의 실천이었다. 우당 이회영의 부인 이은숙의 <서간도시종기>, 백하 김대락의 <백하일기> 석주 이상룡의 <석주 유고>의 기록을 통해 당시 독립지사와 가족들이 떠 났던 서간도 망명길을 함께 가며 독립지사들의 독립 의지를 생각해 보자. 안동현 출발-34km-고루자 촌(1박)–80km-관전현 영전 진(2박)-127km-태평초진(3 박)–141km-보달원진(4박)–혼 강반라초–175km-환인 사첨 자(5박)–205km-이붕전자(6 박)–220km-횡도천 도착 환인현 횡도천으로 가는 마찻길 노정 항일지사들 압록강을 건너다 1910년 12월 ~ 독립지사들은 왜 고난과 시련의 길, 서간도로 갔을까? 서간도 횡도천 무관학교준비 1911년 1월 15일 우당 이회영 6형제와 60여명의 일행은 1910년 12월 30일 압 록강을 건너 안동현(현재 요녕성 단동시)에 도착한 후, 생활 물자와 만주지도 등을 구입한 뒤에 마차를 빌려타고 영하 30 도를 오르내리는 길을 달려 1월 6일에 횡도천에 도착하였다. 백하 김대락 가문은 1910년 12월 24일 안동 내앞마을을 떠나 서간도로 향했다. 1911년 1월 6일 서울을 출발하여 신의주에 도착한 뒤, 1월 8일에 압록강을 건너 안동현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엄동설한에 마차를 타고 오백여 리의 길을 달려 1월 15일 횡도천에 도착하였다. 환인현 횡도천에서 약 4개월을 머문 뒤 유하현 삼원포에 정착한 것은 4월 18일이었다. 석주 이상룡 가족은 1월 26일 압록강을 건너 안동현에 들어 갔고, 만주 서적, 지도 등 구입한 후 1월 29일 안동현을 출발 하여 2월 1일 관전성, 2월 4일 태평성, 2월 7일에 횡도천에 도착하였다. 독립지사들이 압록강을 건너 도착한 단동에서 횡도촌으로 가는 540여 리의 길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생전 처음 접하는 북방의 추위는 뼛속까지 파고들었고, 중국인의 냉대, 마적의 위험이 각처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나라 잃은 서러움이었다. 경학사. 신흥강습소 설립 1911년 4월 15일 독립의 꿈과 희망. 서간도로 가다 독립지사들의 만주 망명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