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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2024년 12월 Special Theme 정의부 창립 100주년 기념 특집 ‘만주 독립운동 세력의 국내 진공’ 다. 그는 5 만원 이상 의 군자금 획득과 국 내에 당 연 락 기관의 설치를 목 표로 활동 했다. 서원 준은 과거 평 양 에 서 노 동 운 동 을 함께 했던 안영준(安永俊)을 동지로 포섭한 후, 조 선은행과 조선실업은행 평양지점 등을 습격하고자 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금융기관 습격에 성공하면, 안영준을 당연락기관으로 지명하 고 수천원의 자금을 지원하여 독립운동을 수행케 하 고자 하였다. 그러나 작전은 성공하지 못헸으며, 경 찰의 추격을 받던 서원준은 사라원 경찰서 순사부장 토미다 고기치로[富田吉五郞]를 사살하기도 했으나 6월 16일 평안남도 평원군 동송면에서 체포되었다. 그는 1935년 2월 8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사형 판결 이 확정되었으며, 4월 30일 평양형무소에서 순국하 였다. 1935년 7월에는 조선혁명당에서 국내공작위원 회를 설치하기 위해 당원 유광호(柳光浩)를 경성으 로 파견하였다. 그는 다수의 당원을 포섭하였으며, 1936년 3월에는 당으로부터 1,000원의 자금을 지 윈 받아 가옥을 매입하여 본부로 사용하는 한편, 학 생층과 운수노동자층으로 조직을 확대하던 중 체포 되었다. 이에 조선혁명당에서는 정치부 비서과장 을 역임하던 윤영배(尹永配)를 파견해 조선내공작위 원으로 지속적인 활동을 하게 하였다. 그는 1936년 10월 평양으로 들어와 활동하던 중 체포되었으며, 1937년 12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언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조선혁명군 국내특파대장 변낙규 관련 보도 기사 (『동아일보』 1933.2.26) 조선혁명당 국내공작위원회 윤영배의 재판 관련 보도 기사(『조선일보』 1937.12.10) 서원준의 국내 특공작전을 대서특필한 보도 기사 (『조선일보』 193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