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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2024년 11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가계와 관료 생활 복암(復菴) 이설(李偰)은 철종 원년(1850 년) 1월 결성군 화산면(현재 충남 홍성군 구 항면) 오봉리에서 부친 조익(祖益)과 광산 김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는 순명(舜命) 또는 순도(舜徒), 호는 복암(復庵)이다. ‘복암’은 옛 집에 돌아간다는 뜻으로 그가 과거에 급제한 이후에 사용하였다. 이설의 집안은 홍주지역의 명문가였다. 그 러나 증조부터는 벼슬을 않고 더욱이 그의 생부 조익(祖益)은 그가 13살 때, 양부인 조겸 (祖謙)마저 19살 때 작고하여 가세는 기울었 다. 이에 따라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었던 것 으로 알려진다. 7세부터 천자문과 동몽선습을 읽고 9세 때 부터는 족조인 이훈(李壎, 1804~1868)에게 소학을 배웠다. 이때부터 남당(南塘) 한원진 (韓元震)의 학문을 잇고 있는 이돈필의 문하에 핵심공적 1896년 홍주의병에 참여하 였고, 1905년 을사늑약 후 매국적 처단과 대일 결사항 전을 상소하며 홍주지역 유 생들에게 의병 봉기를 독려 하였다. ■ 건국훈장 독립장 이설 선생 1896년 홍주의병 참여 1905년 을사늑약에 항거 2차 홍주의병 봉기 촉구 ‘대일결전론’을 실천에 옮긴 유학자 “나는 국모의 원수를 갚으려 하였으나 힘이 모자라 도적을 치지 못하였다. 차마 군부(君父)가 당한 욕을 말한다면 의리상 살아 있을 수 없어서 춘추필법에 따 라 붓으로라도 주륙하려는 뜻을 품고 바야흐로 항의 하는 장계를 올리고자 하였는데, 그 명분이 의거의 당(當-마땅함)에서 나왔기에 마침내 체포되었다. 죽 음이 있을 따름이요. 다른 할 말은 없소이다.” - 이설의 「고등재판소 공술」에서 글 편집부 주요약력 ● 1850년 1월 24일 충남 결성(홍성) 출생 ● 1889년 12월 식년시 전시 과거 합격 ● 1894년 대일항전론 주장 ● 1896년 김복한 등과 홍주(홍성)에서 거병, 항일격 문과 공사관에 보내는 장계 작성 ● 1904년 일본이 전국의 황무지 개척권을 요구하자 반대 격문 배포 ●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매국적 처단 및 일본과 결사항전을 상소 ● 1906년 4월 29일 제2차 홍주의병 봉기를 독려하 던 중 고향에서 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