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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순교자 진 야고보 신부(1911.11.15 ~ 1950.7.4)
진 야고보(James Maginn)신부는 1911년 11얼 15일 미국 몬태나주 뷰트(Butte, Mondana, USA)에서 출생하였다. 1922년 가족과 함께 아일랜드 뉴캐슬(Newcastle, Ireland)로 이민하였고, 1929 네번(Navan)의 달간 파크(Dalgan Park)에 있는 성골롬반 외방선교회의 대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공부를 하고 1935년 12월 21일 사제서품을 받았다. 1936년 11월 7일에 한국에 입국한 진 신부는 이듬대 4월 광주교구 순천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 1939년 4월 25일 서울대목구에서 분리되어 춘천지목구가 설정되고 성골롬반 외상선교회가 사목을 담당하게 되어, 진 신부는 8월부터 강원도 평강본당에서 사목을 하였다. 1941년 12월 8일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평강및 이천에서 활동하고 있던 진 야고보 신부를 비롯한 외국인 신부들을 평강감옥에 감금하였다가 12월 25일 춘천감옥으로 이송하였다. 진 신부등은 1942년 초에 석방 후 홍천본당에 가택연금을 당하여 사목을 전혀 할 수 없었다. 1945년 해방 후 홍천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여 1947년 2얼까지 선교활동을 하였다. 그 후 고국에 돌아가 휴양을 하였다. 1949년 재입국한 진 신부는 삼척 남양동에 목조건물을 구입하여 성당과 사제관으로 수선하였다. 춘천교구장(토마스 퀸란)은 1949년 10월 7일 성당을 봉헌하고, 진 야고보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여 삼척본당을 설립하였다. 당시 삼척본당 관내에는 쇄운리공사를 비롯하여 100명의 신자들이 있었다. 진 신부는 사목활동과 아울러 이웃사랑을 실천하고자 노력하였다. 진 신부는 극빈자들에게 먹을 것과 옷을 나눠주기도 하고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씻겨 주기고 하였고, 간혹 사제관에서 시계나 돈을 훔쳐가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타일러 올바른 길로 인도하였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얼어나자 피난을 준비하던 신자들은 진 신부에게도 피신할 것을 권했지만, 진 신부는 "무신론자들에 맞서 하느님을 증거하고 신자들과 교회를 지켜야 한다"며 완강히 거부하였다. 7월 1일 공산군이 삼척을 점령하였는데 7월 2일 아침 진 신부는 피난을 가지 않고 함께 있던 삼척공고 영어선생 김수성(요한)과 주일미사를 봉헌하고 "우리가 체포되면 시베리아로 보내지거나 하느임을 만나 게 될 것" 이라고 말하였다. 그날 공산당원들이 들이닥쳐 진 신부를 정치보위부로 데려갔고, 몇 시간 후 김요한도 체포되어 감금되었다. 진 신부는 공산당에게 며칠 동안 고문과 모욕 가운데 배교를 강요당하였지만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7월 4일 밤중에 공산당이 진 신부를 끌어내려 하자 죽음을 예견한 진 신부는 그날 밤 지지리 마을 앞 소하천변에서 총살당하였다. 시신을 발견한 마을 사람들은 근처 야산에 가매장하였다. 진 신부의 시신은 1951년 10월 춘천교구에 의해 확인되었으며, 1952년 3월 춘천 죽림동성당 성직지 묘역에 안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