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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 순국선 열 독 립 항쟁사 49 안동유림들은 의병운동을 전개하는 동안 서양의 신문화와 신사상을 받아들 였고 혁신유림으로 전환하여 애국계몽운동을 이끌었다 한 안동의 혁신유림이 국외 독립항쟁을 이끈 데에는 안동문화권만의 선비 정신과 깊은 관련이 있다. 조선 후기 남인들의 정계 진출이 막히자 안동 유림들은 학문의 발전에 힘쓰기 시작하였다. 집성촌, 학 문적 동지, 혼맥 등을 통하여 관계를 돈독히 하며 새로운 학문을 받아들이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안동 유림들은 의병 운동을 전개하는 동 안 서양의 신문화와 신사상을 받아들였고 혁 신유림으로 전환하여 애국계몽운동을 이끌 었다. 류인식, 이상룡, 김동삼, 김대락, 김후 병 등이 대표적인 혁신유림이다. 이들은 근 대식 중등학교인 협동학교와 계몽 운동 단체 인 대한협회 안동지회를 설립하여 애국계몽 운동을 이끌었다. 안동은 우리나라 독립항쟁 의 성지라 불릴 만큼 조선 말기 의병 항쟁부 터 광복을 위한 독립 투쟁에 이르기까지 독 립항쟁이 오랫동안 치열하게 벌어진 곳이다. 1894년 갑오의병을 시작으로 안동 지역에서 배출한 독립유공자는 350명을 넘어선다. 안동지역의 독립항쟁은 유림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는데 대의명분을 중시한 안동 유림들은 일제의 침략에 맞서 독립항쟁을 펼치는 것을 당연시 여겼으며 부(富)의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아 양반들 간의 갈등이 적었고 집단 간의 결속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들 양대세력이 힘을 합쳐 1911년에 세운 것이 경학사와 신흥강습소였다. 일제에 맞서 무력으로 투쟁하라 | 무장 투쟁의 전개 일제 치하 독립항쟁은 여러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열강들과의 외교를 강화하여 독립을 되찾으려 는 외교론, 독립을 위해서는 그만한 실력이 필요하므로 먼저 민족의 실력을 길러야 한다는 민족 실 력 양성론, 지금은 일제의 힘이 강해 독립이 불가능하니 우선 민족의 자치권을 얻는 데 힘써야 한다 는 자치론 그리고 무력을 사용하여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무장 독립 전쟁론 등이 대표적이었다. 이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독립항쟁은 무장 독립 전쟁론이었다. 3.1 운동 당시 일제의 폭력적인 탄 압이 이루어짐에 따라 무장을 하고 직접 싸우는 것만이 일제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는 가장 빠른 길이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무장 독립 투쟁은 간도와 연해주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수많은 독립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