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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안창호의 독립운동 방략과 실력양성론 49 안창호는 1920년 전후 시기 독립 운동 세력의 무장투쟁론 · 교육산 업우선론(실력양성론) · 의열투쟁 론 · 무정부주의론 · 외교론 · 준비론 등 다양한 노선간의 사상적,방법 론적 갈등을 극복해 각 노선간의 대 립을 피해 조화롭게 공존하며,서 로를 수용하는 상호보완적 역할분 담과 상황대처론을 펼쳤다고 평가 된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분열과 반 목이 아닌 연대와 통합을 위해 노력 한 안창호의 독립운동 방략과 그 노 선은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다. 특 히 그를 단순히 ‘실력양성론자’로 치부하며 그 한계를 지적하는 종래 의 연구 및 평가 경향도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그는 독립전쟁을 위한 준비, 실력양성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점진적 독립전쟁론자’로 분 류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일본의 조선 · 대한제국 침략과정에서 이미 한국인들은 동학농민군, 의병 등의 형태로 치열한 항일투쟁과 의병전쟁을 전개하였다. 또 일본 의 강제병합 이후에는 독립만세운동, 무장투쟁, 외교독립운동, 실력양 성운동, 의열투쟁, 파업과 소작쟁의(노농운동)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독 립운동을 지속하였다.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은 제국주의 세력에 저항하 는 ‘반제국주의 운동’이면서, 동시에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에 저항하는 ‘항일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한편, 한국의 독립운동은 동시에 새로운 민족국가를 수립하려는 운 동이었기 때문에 ‘건국운동’이기도 했다. 즉 이미 멸망해버린 대한제국 을 회복하는 운동이 아닌, 새로운 근대 민족국가를 세우려는 운동이기 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국가를 세울 것인가, 아니면 사회주 의(공산주의) 국가를 세울 것인가를 놓고 독립운동 진영 내에서 이견이 빚어졌으며, 그 결과 독립운동 진영의 이념적 분열과 대립이 빚어지기 도 했다. 양 진영은 일본제국주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목표를 공 유하면서도, 상호간에 세력경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독립운동은 ‘광복운동’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 일제의 지배라는 압박에서 심한 종속상태에 놓여 있던 한민족(특히 가장 큰 심한 억압을 받고있던 농민과 노동자 등 피압박계급)을 해방시키려는 운동이었기 때문에 ‘민족해방운동’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독립과 자주를 쟁취하기 위한 방법론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즉 외교독립론, 독립전쟁 론, 실력양성론, 심지어는 자치론까지 등장하여 논쟁을 벌이기도 했던 것이다. 여기에서는 실력양성론(혹은 준비론)을 대변한 것으로 알려진 안창호의 독립운동 방략과 실력양성론 등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안창호의 독립운동 노선에 대한 다양한 평가와 올바른 이해 필요성 최근까지 한국학계는 대체로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1868~1938) 의 독립운동, 민족운동 노선을 ‘(점진적) 실력양성론’으로 규정하고, 이 러한 시각으로 그의 행적과 사상을 해석해왔다. 또 일제강점기 안창호 와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반대세력 및 사회주의자들의 비판과 공격, 그리고 안창호의 활동에 부정적이었던 일본 관헌 기록을 근거로 안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