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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임시정부의 국군 한국광복군 총사령 지청천 49 일제의 대한제국 강제병합 이전부 터 싹트기 시작한 독립전쟁은 1945 년 8월 15일 해방의 날까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지속되었다. 많은 독립군과 한국광복군이 목숨을 바 쳐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조국광복 은 독립군과 광복군의 피로 쟁취한 것이었다. 독립전쟁의 역사가 곧 독 립운동의 역사이니 독립전쟁을 이 끈 지도자도 적지 않았다. 가장 오랫 동안 독립전쟁 최일선에서 활동했 고 광복군 창군 이후에 임시정부의 독립전쟁을 실질적으로 이끈 지도 자가 지청천이다. 지청천 장군의 활 동을 통해 독립전쟁의 역사를 살펴 보는 작업은 그를 따르던 무명의 독 립군과 광복군의 공헌을 기억하는 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는 독립운동이다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는 독립운동이다. 헌법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 · 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 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적혀 있듯이 대한민국은 독립운동의 토대 위 에 세워졌다. 당연히 대한민국의 군도 독립운동을 계승했다고 보아야 한다. 제국주의의 식민통치를 경험한 나라에서 나타난 독립운동의 최 고의 방법이자 결정적 수단은 독립전쟁이다. 스스로의 힘에 의해 해방 을 쟁취했는가의 여부를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도 독립전쟁이다. 일제의 대한제국 강제병합 이전부터 싹트기 시작한 독립전쟁은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날까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지속되었다. 많은 독립군과 한국광복군(이하 광복군)이 목숨을 바쳐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조국광복은 독립군과 광복군의 피로 쟁취한 것이었다. 독립전쟁의 역사가 곧 독립운동의 역사이니 독립전쟁을 이끈 지도자 도 적지 않았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오랫동안 독립전쟁 최일선에서 활 동했고 광복군 창군 이후에는 임시정부의 독립전쟁을 실질적으로 이끈 지도자가 지청천(池靑天, 1988~1957)이다. 만주에서 독립전쟁을 이끌다 지청천의 본명은 석규(錫奎) 또는 대형(大亨)이다. 지청천은 1907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했다. 외세의 침탈에 맞서기 위해서는 군사력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같은 해 8월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고 1909년 육군무관학교도 문을 닫게 됨에 따 라 대한제국의 국비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유학의 길을 떠났다. 1914년 5월 일본 육군사관학교 본과를 졸업한 뒤 일본군 장교로 복 무하던 지청천은 1919년 3 · 1운동 이후 망명 기회를 노리다가 1919년 4월 14일(음력) 만주로 탈출함으로써 독립운동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 러면서 본래의 이름 대신 ‘이청천(李靑天)’이라는 이름을 쓰기로 했다. 성은 어머니의 성을 따라 바꾼 것이다. 독립운동 당시에는 이청천으로 널리 알려졌다. 망명 후 지청천은 독립전쟁 군사간부 양성을 목표로 한 신흥무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