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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2025년 2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2 · 8독립선언을 다시 본다’ 주의에 대해서 그때까지도 여러 논의가 있었고, 또 한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즉각 전개하려고 하는 급진 론이나 실력양성 · 자치 · 국권회복론 등이 있었다(위 의 책, 96쪽). 나아가 그는 1919년 1월 6일부터 8일까지 3일 동 안의 도쿄조선유학생학우회의 움직임에 대해 상술 한다. 재일유학생들은 독립운동의 구체적 계획을 진행 시키기 위해 1919년 1월 6일 도쿄조선기독교청년 회관에서 학우회 주최의 신년 웅변대회를 열었다. 그곳에서는 윤창석(尹昌錫), 서춘(徐椿), 이종근(李琮 根), 최근우(崔謹愚), 김상덕(金尙德), 안승한(安承漢), 전영택(田榮澤) 등이 번갈아 서서 --- 연설했다. 다음 날 7일 같은 회관에서 협의사항 보고와 함 께 ‘강개적 연설’이 이루어짐에 따라 최근우, 서춘 등 12명의 학생은 경시청에 연행되었고, 불온당하다고 권설되어 집회 참석자는 임의 해산했다. 다음 날 8일도 일반유학생은 같은 회관에 집 합했 으나 또다시 윤창석 등이 연행되어 집회는 어쩔 수 없이 해산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본 관헌의 엄격한 감시 하에서 비밀리에 운동을 진행해야 했다(위의 책, 96쪽) 이러한 3일 동안은 재일유학생 사회의 합법의 공 간에서 적극적인 독립운동의 네트워크를 구성해 갔 던 것이다. 여섯째, 박경식은 당일의 시위투쟁에 대해서도 적 극적인 서술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를 서술하기 에 앞서서는 선전, 선동 활동에 대해 주목했다. 연구실에서의 박경식 선생(KBS-TV 제공) 박경식, 『일본제국주의의 조선 지배』 상 · 하 표지(일본 靑木書店, 1973년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