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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2023년 4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경상북도 안동군 임하면 천전동(川前洞, 내앞마을)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의성(義城) 이며, 본명은 긍식(肯植)이고, 종식(宗植)이라 는 이름도 썼다. 호는 일송(一松)이고, 김동삼 은 만주로 망명한 뒤 사용한 이름이다. 집안 학문을 이어받고,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 에게 유학을 배웠다. 안동 협동학교 설립, 교사로 교육 · 계몽운동 주도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상경했던 류인식(柳寅植)이 신문물을 접하고 돌아와 계몽운동을 시작했지만 유림의 반발로 목 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1907년 3월 다시 시 도한 것이 협동학교(協東學校) 설립이었다. 1907년 3월 류인식 · 김후병(金厚秉) · 하중환 (河中煥) 등과 함께 내앞마을에 3년제 중등 과정인 협동학교를 세우고 교육사업에 앞장 섰다. 내앞마을 의성 김씨 종손 김병식(金秉 植)이 교장을, 김동삼이 교사를 거쳐 교감을 맡았다. 협동학교는 영남 사회가 변하는 교두보 이자, 새로운 깃발이었다. 당시 『대한매일신 보』나 『황성신문』은 협동학교 설립과 발전 상을 보도하고 격려하였다. 유림의 압력과 예천의병의 공격으로 교사들이 폭살당하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협동학교는 젊은 신지 핵심공적 안동 협동학교를 설립하고 남만주 경학사, 신흥학교 등 에서 활동했다. 백서농장을 운영하며 독립전쟁을 준비했 으며, 서로군정서 참모장, 한 족회 간부, 국민대표회의 의 장, 통의부 총장, 정의부 군사 위원장, 혁신의회 간부 등으 로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나라 없는 몸 무덤은 있어 무엇 하느냐. 내 죽거든 시신을 불살라 강물에 띄워라. 혼이라도 바다를 떠 돌면서 왜적이 망하고 조국이 광복되는 날을 지켜 보리라.” 그가 남긴 유언대로 그의 유해는 화장하여 한강에 뿌렸다. ■ 건국훈장 대통령장 김동삼(金東三) 선생 글 편집부 ‘만주벌의 호랑이’ 독립운동 단결 · 통합과 만주 독립운동 주도한 주요약력 ● 1878년 6월 23일 경상북도 안동군 출생 ● 1914년 남만주 서간도 백서농장 장주 ● 1923년 1월 18일 국민대표회의 의장 피선 ● 1923년 8월 대한통의부 총장 ● 1924년 정의부 참모장, 군사위원장 ● 1931년 10월 12일 중국 하얼빈에서 체포됨 ● 1937년 4월 13일 서울 마포형무소에서 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