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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국민부의 성립과 항일독립운동 47 1929년 4월 남만주 지역의 새로운 통합조직으로 국민부를 결성했였 다. 국민부는 재만(在滿)한인의 문 화향상, 산업발전, 공안유지를 전적 인 임무로 할 것, 재만한인의 단일 자치기관 실현을 위해 노력할 것, 한ㆍ중 양민족의 혁명적 협동공작 을 위해 노력할 것 등을 강령으로 채택했다. 같은 시기에 조선혁명당 도 결성했는데 당은 혁명이론과 방 법을 개발하여 조선의 독립을 달성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조선혁명당 산하에는 당군으로 조선혁명군을 두었다. 1931년 9월 ‘만주사변’이 발발하자 국민부에서는 일본군 동 향과 국경지역 상황을 파악하는 한 편, 다양한 방법으로 군자금을 획득 하고자 노력하였다. 조선혁명군 사 령관 양세봉은 한ㆍ중 연합작전의 전개를 통해 국민부의 위상을 강화 하고, 한중 양민족의 연합 무장투쟁 을 실현하여 일제 침략 세력에 항전 코자 하였다. 국민부의 성립과 친일파 처단 1920년대 후반 이후 민족유일당운동과 삼부통합운동을 주도했던 정 의부에서는 1929년 4월 새로운 통합 조직으로 국민부(國民府)를 결성 하였다. 국민부는 재만 한인의 문화향상, 산업발전, 공안유지를 전적인 임무로 할 것, 재만한인의 단일 자치기관 실현을 위해 노력할 것, 한 · 중 양민족의 혁명적 협동공작을 위해 노력할 것 등을 강령으로 채택하였다. 1929년 9월 27일 제2회 중앙회의에서는 중요 간부를 선출했다. 중 앙집행위원장에 현익철(玄益哲), 지방부 집행위원 양인원(梁仁元, 본명 양기하), 교육부 집행위원 김관윤(金寬允), 공안부 집행위원 김문거(金 文擧), 재무부 집행위원 장숭언(張承彦) 등을 임명했으며, 중앙사판소와 중앙검리국을 설치하여 행정부와 재판소, 검찰 조직을 갖춘 삼권분립 체제를 도모하였다. 또한 흥경(興京), 환인(桓仁), 유하(柳河), 통화(通化), 집안(輯安), 관전(寬甸), 본계(本溪), 해룡(海龍), 무순(撫順) 등에 지방집 행위원회를 설치하였다. 같은 시기에 조선혁명당도 결성했는데, 당은 혁명이론과 그 방법을 개 발하여 조선의 독립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민족유일당운동의 연 장선에서 결정된 조직이었다. 조선혁명당 산하에는 당군(黨軍)으로 조선 혁명군을 두었다. 무력기관으로서 한인 교민 보호와 친일파 숙청 및 국 내 진입작전을 통한 일제 기관의 파괴 등을 중요 목표로 하였다. 한편 만주사변 이후 국내언론에서는 국민부에 대해 ‘조선○○운동의 전투단체로서 유일한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었는데, 이는 국민부와 조 선혁명군이 별다른 구분없이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고 있었기 때문으 로 생각된다. 실제로 국민부는 1934년 11월 11일 군민(軍民)대표자회 의를 개최하고 행정조직인 국민부와 군사조직인 조선혁명군을 통합해 ‘조선혁명군정부’라는 통합기구를 조직하였다. 1931년 9월 ‘만주사변’ 이전 국민부의 항일투쟁은 친일세력 처단에 집중되었다. 주로 한교동향회(韓僑同鄕會)가 그 대상이었다. 한교동향 회는 통화(通化)영사관 경찰과 조선총독부 외사과원 후쿠미치 기이치 [福道義一]의 후원 하에 일제 경찰의 독립운동자들에 대한 수사에 협조 하거나 중국당국에 독립운동자의 체포와 단속을 요청하는 활동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