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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경남지역 후기 의병 봉기와 일본군의 의병 탄압 47 1908년 8월 이후 경남지역 의병장 을 분류해보면 김동신 계열이 가장  많았다. 노병직(노병대), 차은포(차 인표), 문태익, 유종환, 이순진 등이  그들이다. 경남에서 활동한 의병대 에는 인근 지역주민은 물론, 해산군 인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 은 일본군 토벌대와 많은 전투를 치 르면서, 상대적으로 방어능력이 약 한 주재소나 면사무소, 우편국 등 관 아를 주요 공격 목표로 삼아 반일 의 병투쟁을 전개했다. 일본인과 우편 체송인, 친일세력 등도 의병투쟁의  주요 목표였다. 당시 일본군 보병제 14연대에 의한 경남의병 진압은 전 체 구도에서 보면 호남지역 의병세 력을 진압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  성격을 띠었다고도 할 수 있다. 경남지역의 의병 봉기와 활동 1904년 러일전쟁 발발 이후 경남지역에서 의병항쟁의 불씨를 지핀 인물로는 문태수(文泰洙, 일명 文泰瑞)와 김동신(金東臣)을 들 수 있다. 경상남도 안의(安義) 출신 문태수가 의병을 일으킨 것은 1906년 경으로 짐작되나, 의병 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한 것은 1908년 1월 13도연합 의병부대의 서울 공략 실패 이후이다. 김동신은 충남 회덕 출신으로 일 찍이 1906년 5월 홍주 의병장 민종식과 접촉한 이후 영호남 일대에서 의병대를 조직하였다. 그가 경남으로 내려와 의병 활동을 시작한 것은 문태수보다 조금 앞선 1907년 9월 경으로 보인다. 다만 김동신은 얼마 후 발병하여 고향인 충남 회덕군 탄동면 덕진동에서 은신하고 있다가 1908년 6월 일본군 병사에 탐지되어 체포되고 말았다. 1907년 8월 대한제국 군대 강제해산 이후 의병 진압의 주력부대였 던 일본군 보병제14연대가 작성한 『진중일지』에는 여러 명의 경남지역 의병장들이 등장한다. 이들을 계통별로 분류해보면 김동신 계열이 가 장 많다. 노병직(노병대의 이명), 차은포(차인표의 오기 또는 이명으로 추정), 문태익(文泰翌), 유종환(兪宗煥), 이순진(李舜珍, 李長春의 이명으 로 추정)등이 그들이다. 김동신의 비장(裨將)이었 던 유종환은 경남 진주 출 신으로 김동신과 함께 활 동하다가, 김동신이 체포 된 이후 스스로 독립부대 를 결성하고 대덕산 및 덕 유산을 배경으로 충청‧ 전라‧경상 3도 접경의 산 악지대를 배경으로 하여 의병투쟁을 전개하였다. 1909년 5월 경남 거창에서 최후를 맞이하였다. 그가 마지막 치른 전투는 1909 경남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 생가터에 세워진 문 태수 의병장 흉상( 뉴시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