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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함안 3 · 1운동의 전개양상과 특징 47 의 격렬함과 일제의 가혹한 탄압을 엿볼 수 있는 대 목이다. 두 곳으로 나누어진 거점 함안의 3 · 1운동은 주도층과 중심지역에 따라 그 양상 또한 사뭇 달랐다. 함안의 동북쪽에 위치한 칠 북연개, 대산평림, 칠원에서는 기독교 세력이 중심 이 되어 평화적인 만세운동이 전개됐다. 칠북 연개 장터 의거는 새말교회와 경명학교가 거점이 됐고, 대산과 칠원 의거는 평림리교회와 하기리교회를 거 점으로 전개됐다. 이 칠북, 대산, 칠원 세 지역의 의 거는 주도 세력도 비슷하고, 또한 정보 교환과 군중 동원에 서로 협력했다. 함안의 남서쪽인 함안읍과 군북에서는 유림세력 의 주도 하에 대규모의 격렬한 만세운동이 전개됐 다. 3월 19일 함안읍 의거에 참가한 유림들은 그 다 음날인 3월 20일에 전개된 군북 의거에도 적극 동참 했다. 이 두 곳의 의거는 규모면이나 투쟁의 치열성 등을 종합하면 함안의 대표적인 3 · 1운동으로 꼽을 수 있다. 다만 함안읍, 군북, 칠원의 시위에서 개 작 (改作)한 독립선언서를 전달했다는데 남아있지 않는 점이 특이하다. 20명이 현장에서 순사하고, 77명이 실형을 선고 받다 함안읍과 군북의 의거는 14일이라는 상당한 기 간 동안 비밀을 유지한 채 은밀하게 준비 됐다. 함안 읍 의거는 주요참가자들이 1910년대부터 지속적으 로 항일운동을 해 온 안지호와 협의하여, 여항면 동 명학교를 거점으로 삼고, 3월 19일의 함안읍 장날을 거사일로 정했다. 이들은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제 작하는 한편, 이 계획을 각지에 알렸다. 3월 19일 정오, 비봉산에서 고천제를 지내고 태평 루에서 독립선언식을 마친 뒤, 읍내 봉성동에서 수 백 명이 모여 시위가 시작됐다. 오후 2시, 3천여 명 으로 늘어난 시위군중은 경찰주재소로 행진했다. 긴 급 출동한 마산경찰 기타무라와 경찰들이 무력으로 진압하려하자, 격노한 시위군중은 도끼, 몽둥이, 돌 군북3 · 1운동기념탑(함안군청 제공) 2023년 3월 20일 군북면에서 열린 ‘군북 3 · 20독립만세운동’을  기리는 기념행사(국민일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