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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일제의 중국 침략과 관내 한인의 동향 47 것이었다. 한편 일본이 항복문서에 서명한 다음날인 1945년 9월 3일에 임시정부는 ‘국내외동포에게 고 함’을 발표하였다. 이를 통해 국내에 들어가 추진할 과제를 ‘당면정책’ 14개 항으로 알린 임시정부의 요 인들은 1945년 11월 23일과 12월 1일 두 차례에 거 쳐 환국했다. 중국 관내에서 해방을 맞은 한인들의 귀환도 추진 되었다. 현지 잔류를 택한 일부를 제외한 한인들의 귀환은 주로 1945년 말부터 1946년 여름까지 집중 되었는데, 지정 위치로 집결 후 미군정이 제공한 LST 선박을 타고 귀국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환국한 임시정부를 대신해 중국 내 한인 생명과 재산 보호업 무를 맡았던 주화대표단(駐華代表團)은 중국정부와 교섭하며 한인의 귀환과 현지 정착을 도왔다. 1910년 나라를 빼앗기고 35년 간 식민지 지배를 받게 되면서 한인들은 각자의 이유로 고국을 떠나 중 국 관내에 머물다가 해방을 맞이했다.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며 준비해온 미국 OSS와의 공동 국내진입작 전이나 국내외 독립운동 세력 간의 상호 연계시도 등 이 일제의 ‘갑작스러운’ 항복으로 인해 실행되지 못 한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일제가 침략 했을 때부터 패망해서 물러날 때까지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일제를 상대로 끊임없이 전개한 독립운동이 있었기에 우리는 해방을 맞이할 수 있었 다. 광복 78주년을 맞이하는 오늘, 우리민족의 해방 은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여 얻어낸 성과임 을 다시 한 번 기억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필자 조은경 중앙대학교 역사학과에서 학사,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독립운동사를 전공했으며, 중국 관내지역 한인 독립운동을 주요 연구분야 로 삼고 있다. 현재 독립기념관 학예연구관(전시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저로는 박사논문인 『중국 광저우 지역 한인 독립운동 연구(1910~1948)』을 비롯, 「한국광 복 군총사령부 간부 회고를 통해 본 한국광복군 인식과 활동」, 「중국 광주지역 내 한국 독립운동 관련 기념물 조성과 인식변화」 등이 있다. 귀국 직전 충칭 임시정부 청사에서 기념촬영한 임시정부 요인들 (1945년 11월) 임시정부 발표 「국내외동포에게 고함」(1945.9.3, 국립중앙박물 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