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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영월엄씨대종회보 43호 가. 첫 번째 시향산 : 월출산록 누릿재(累里峙) 삼성당공 내력에서 밝혔던 대로 묘역이 조성된 당시에는 산간 벽지였기 때문에 주변에 지금 처럼 현대적인 도로망이 형성되지 않아 오로지 도보로만 접근해야 했다. 병영에서 출발 하면 왕복 2시간 거리여서 관리가 쉽지 않았다. 매년 한식절에 시제를 올렸다고 전해져오지만 자세 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나는 중학생이 되고 나서 선친을 따라 개별적으로 참배한 것 이 처 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때 깨끗하게 정리된 묘역을 둘러보면서 의병장 현의 우국충정 과 의 기를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선친께서는 그런 깨우침을 주기 위해 중학생이 된 나를 참배 시켰 던 것으로 새기고 있다. 두 번째 참배가 회장이 되고 난 다음해인 2010. 3. 15. 한식시제(실제 한식은 동지후 105일 이기 때문에 4월 4일이었지만 앞 당긴 사연이 있다.)에 이루어 졌다. 약간의 빗발이 날리 는 가 운데 새벽 6시 50분에 주삼(진웅), 주성, 도섭(도조), 부섭(양섭) 4인이 서울강남터미널에 서 만 나 7시 10분에 출발, 광주 10시 30분 도착, 인천서 출발한 장섭(장협)과 광주 성섭(기오 )이 합 류하여 섭의 봉고편으로 이동, 영암에서 병영 주봉(주남), 남섭을 만나 함께 오후 1시에 묘역 진입로 출발지인 성전면 월하리 선산관리인을 찾았다. 그런데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도 출타중이어서 다소 언짢았지만 아주머니의 안 내로 묘역으로 향했다. 산길을 오르기 전에 관리인이 농사를 짓는 문중답을 확인했다. 우리를 안내 하던 아주머니가, 멧돼지 때문에 작년에는 전혀 농사를 짓지 못했는데 금년에는 그래도 농사 를 지어볼까 하고 준비중이라며 잘 정리해 놓고 있었다. 산길을 접어들면서 무릎이 불편 하다 는 아주머니를 돌려 보내고 우리끼리 더듬어 올라가는데 흔적이 희미한 길을 수풀더미 가 덮 고 있어서 한참을 헤매었다. 『정약용 남도유배길』이라는 노랑색 작은 헝겊조각 안내표 가 나 뭇가지에 달려 있는 것을 발견하여 더듬어 가면서 오솔길을 따라 올라 갔다. 이 노랑 헝겊 안내 표지는 최근에 와서 정약용 연구자들이 역사적인 사실을 알리는 것 이지 만 고마운 일이다. 이곳이 옛날 옛적부터 월출산을 넘나든 오솔길이었음을 확인해주는 징표 이니 삼성당공 묘역이 이곳에 자리 잡은 연유를 증명해주고 있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 었다. 그런데 올라가도 올라가도 어느 지점에서 길을 벗어나 묘역으로 올라가는 지점을 가늠 할 수 역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