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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2025년 5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해외 독립운동 세력의 귀환과 해방 정국’ 은 항일연군 출신 88명과 소련국적 고려인 15명 등 103명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에 따른 전투의 조기 종식, 중소우호동맹조약 체결에 따른 중국국민당 정부와의 마찰 가능성에 대한 우려 등으로 실제 전투에는 참여하지 못 한 채 귀환하게 되었다. 북한지역으로 귀환한 88여단 그룹은 최소 60명 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앞서 결정한 대로 조선공 작단 단장이 된 김일성은 제1진을 이끌고 9월 5일 하바롭스크를 출발하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소련 군 태평양함대 사령부 함선을 타고 조선으로 향했 다. 이들은 9월 22일 평양 도착 이후 출신지 및 활동 연고에 따라 소련군 지휘부가 정해준 각자의 임지로 출발하였다. 그들은 해당 지역에서 소련군의 점령정 책 지원을 담당하였는데, 특히 질서 유지와 대민 영 향력을 강화를 위해 도시 경무사령부 부사령관이나 고문, 지역방위 담당 등의 역할에 배치되었다. 김일 성은 평양, 김책은 함흥, 안길은 청진, 김일은 신의 주, 최현은 강계, 서철은 원산, 김경석은 진남포, 최 용진은 정주, 임춘추는 사리원 등의 지역으로 파견 되었다. 일부 88여단 소속 한인들은 중국의 동북지역으로 파견되어 활동하다 뒤늦게 입북하였다. 애초에 조 선공작단 당사업을 담당하기로 되었던 최용건은 주 보중 등과 함께 중국 동북의 장춘(長春)으로 파견되 었다가 10월경 따로 귀국하였다. 강신태(姜信泰, 姜 健)는 1945년 9월 18일 ‘동북항일연군 연변분견대’ 라는 명칭으로 30여 명의 조·중 대원을 이끌고 연길 로 향했고, 김광협은 목단강으로 향해 각각 해당 지 역 경무사령부 부사령관직을 수행하였다. 강신태 그 룹은 10월 20일 중국공산당 연변위원회(서기 강신 태)를 구성하는 한편, 별동대와 보안대 등 무장단체 를 조직하였고, 10월 28일 연변경비사령부를 건립 하는 등 해당 지역 당·군 기관 형성을 주도하였다. 한 편 88여단의 소련국적 고려인들인 이동화, 박길남, 문일, 김 아나톨리, 전학준, 유성철, 김 파벨, 이청송, 정학준, 김청임, 최표도르, 김봉률, 김 알렉세이, 이 종인 등은 주로 통역으로 배치되어 소련군 점령정책 1948년 9월 9일 구성된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초대 내 각 각료(나무위키 제공). 수상 김일성, 부수상 김책, 민족보위상 최 용건이 동북항일연군 출신이었다. 북한에서 생산된 소총을 들고 기뻐하는 군부 내 김일성 측근과 김 일성. 사진 속 인물들은 동북항일연군 출신 인사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