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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2024년 8월 Special Theme   광복 제79주년 기획특집 ‘한국독립운동과 백두산’ 곳의 행정명은 유하현(柳河縣) 전승향(全勝鄕)이다. 님웨일즈의 『Song of Ariran』의 주인공 김산(본명 장지락)은 “대두자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했는데 학교 는 산속에 있었고, 18개의 교실로 나뉘어 있었으며 눈에 잘 띄지 않게 산허리를 따라 나란히 줄지어 있 었다”고 회고했다. 당시의 신흥무관학교 터 앞에는 현재 허름한 중국인 소유의 집이 학교 지점을 알려 주는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인 주귀유(朱貴 有, 1953년생)는 어려서 고아가 되어 한인 양부모 밑 에서 성장했는데, 양부모로부터 신흥무관학교와 한 국독립군의 얘기를 전해 들었다고 했다. 그는 밭 가 운데 신흥무관학교 국기 게양대의 흔적과 집 앞의 논 한가운데 우물터의 흔적을 안내해 주었다. ② 김필순과 이상촌 길림성 통화시(通化市)는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제1회 졸업생이며 교수를 역임했던 김필순이 병원 을 설립한 곳이다. 그는 ‘테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 毅) 조선 총독 암살 미수사건’ 혐의를 받고 감시망이 좁혀지자 1911년 12월 안동(安東, 현재 단동)을 경 유하여 중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통화 시내에서 병 원을 운영하며 50㎞ 떨어진 지점에 있는 삼원포로 이주해 온 신민회 회원 이동녕, 이회영, 전병현(일명 왕삼덕) 등과 함께 독립운동기지 개척 사업에 전력 을 다하였다. 도산 안창호에게 보낸 김필순의 편지는 자신의 주 소를 중화민국 성경성(盛京省) 통화현 동관(東館) 야 소교회당이라고 적고 있다(독립기념관 소장 「김필 순이 안창호에게 보낸 편지」, 1912.3.11). 『통화시지 옛 통화시 동관 야소교회당, 현 동창구 기독교회 (2006.10, 통화) 1900년대 초 국내에서의 김필순(1878~1919, 국가 보훈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