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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2024년 7월 Special Theme    광복 제79주년 기획 특집 ‘한국 독립운동 세력의 현실 인식과 대응’ 시아 연해주 및 시베리아 지역에서도 러 · 일간의 마 찰로 군사 충돌까지 일어남으로써‘러 · 일 전쟁설’도 불거지게 되었다. 일본을 둘러싼 국제적 대립관계는 임시정부에‘천재일우의 기회’로 인식되었다. 이러 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임시정부 기관지 역할을 했던 『독립신문』에는 「아일전미일전(俄日戰美日戰)」, 「미 일전쟁(美日戰爭)」 등의 기사가 연신 보도되었다. 임 시정부는 미 · 일전과 러 · 일전은 시간 문제일 뿐이라 고 기대하며 ‘바로 지금이 독립 할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하였다. 안창호의 신년연설… “전쟁 밖에 없다” 임시정부의 국제 정세에 대한 기대감은 곧바로 1920년 1월 3일 임시정부 신년축하회에서 새로운 독립운동 방략 선포로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노동 국총판인 안창호는 임시정부를 대표하여 앞으로 임 시정부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였다. ‘우리 국민이 단연코 실행할 6대사(六大事)’로서 군사, 외교, 교 육, 사법, 재정, 통일 부문에 대한 방향을 언급하며 이 중 독립을 쟁취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전쟁밖에 없다” 고 힘주어 말한 것이다. 이전과는 다른 입장을 피력 한 것이다. “의(義)를 위해 죽기로 결심한 용기 있는 대한 남자는 규율 있게 질서 있게 대대적으로 일어 나 분투(奮鬪)할 것”을 촉구했다. 국민 개병주의(皆兵 主義)에 의한 군사훈련도 주창하면서 그동안 ‘평화적 인 방략’을 지향했던 도산이 ‘독립전쟁’이라는 의지 를 꺼내 든 것이다. 도산의 연설을 좀 더 살펴보면, 현재 상황에서 즉 시 개전은 불가능하지만 때때로 무력을 사용하여 적 의 시설과 인물을 공격하는 것은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보았다. 강우규의 사이토 마코토[齋藤 實] 신임총독 저격사건이나 나석주의 동양척식주식 회사 폭파사건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으로써 국민의 독립의식을 깨워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한편으 도산 안창호 (1878~1938)(독립기념관 제공) 1919년 10월 임시정부 청사 (상하이 하비로, 경기도박물관 제공) 성재 이동휘(1873~1935) (독립기념관 제공)